지난 기획/특집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7) 제6장 뿌리 있는 젊은이들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19-12-30 수정일 2019-12-31 발행일 2020-01-05 제 3177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산 위에 뿌리 내린 선배들의 삶에서 가장 ‘나다움’을 찾다
‘산 위의 마을’에 사는 청년 장길산씨
농사 짓고 가축 돌보는 일과 더불어 아이들 생태감수성 길러주는 교육도
다양한 세대 함께 사는 신앙공동체
세대 간 소통으로 격려와 지지 느껴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6장에서 ‘뿌리 있는 젊은이들’을 주제로 세대 간의 조화를 강조한다. 오늘날 가족 형태는 3~4인 가구부터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끼리만 사는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이 주를 이룬다. 또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증가하고 있어 세대 간 조화를 이뤄내는 가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렇듯 세대 간 조화를 이루는 가족 형태가 점점 줄어드는 세태 속에 마을 전체가 가족 공동체의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에 위치한 ‘산위의 마을’(대표 박기호 신부)이다. 산위의 마을은 ‘지상에서 천국처럼’을 모토로 노동과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 하는 신앙공동체다. 그 중심에 청년 장길산(요한 사도·28)씨가 있다. 신앙 안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을 아우르며 살아가는 장씨를 만나기 위해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둔 12월 23일 산위의 마을을 찾았다.

■ 획일화 탈피한 나만의 뿌리

12월 23일 ‘산위의 마을’에서 만난 장길산씨. 마을에서의 생활이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말하며 미소 짓고 있다.

“농사짓고, 가축 돌보고, 아이들 가르치고, 전례에 참여하고…자유롭고 행복합니다.”

비탈진 산길을 헤치고 어렵게 도착한 산위의 마을에서 만난 장길산씨는 밝은 미소와 함께 이같이 말했다.

또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평온함이 깃들어 있는 장씨는 “현대 사회는 돈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돌아가는 것 같다”며 “따라서 각자의 고유한 환경과 생각이 스며들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하느님과 자연,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산위의 마을에서 지내다 보면 도시에서 체험할 수 없는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장씨는 어머니가 산위의 마을 설립자 박기호 신부와의 인연으로 2002년 마을 초창기 준비 모임부터 함께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를 했지만, 중학교를 기숙형 대안학교로 진학하게 돼 졸업 후 2006년 16살부터 산위의 마을에서 살았다.

장씨는 “처음 입촌했을 당시 오전은 개인공부, 오후는 어른들을 도와 농사일을 했다”면서 “학생 신분이었지만 한 사람의 몫을 살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었고, 공동체 안에서 격려와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일상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살이 되던 무렵 장씨와 함께 살던 어머니와 동생은 교육 등의 이유로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장씨에게는 선택권을 줬다. 장씨는 “어머니는 서운해 하셨지만, 마을에 남는 것을 택했다”며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순간들이 더 소중하다 생각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고 결정 사유를 밝혔다. 그렇게 마을에 남은 장씨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검정고시와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진학했다.

“오늘날 우리는 젊은이들이 ‘획일화’되는 경향을 봅니다. 자신의 출신과 배경만의 고유한 특성이 모호해지고 젊은이들을 일종의 조작 가능한 신상품처럼 획일화시켜 버립니다. 이러한 것은 문화적 파괴를 가져옵니다. 여러분의 뿌리를 보살피십시오. 그 뿌리에서 여러분이 성장하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권고 186항)

이같은 교황 권고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에 남기로 한 장씨의 결정은 획일화된 현대사회에 울리는 경종과 같았다.

세대를 아우르며 살아가는 ‘산위의 마을’에서는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공동체 식구들이 식사 전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 모든 세대가 어울려 사는 삶

산위의 마을에서는 ‘산촌유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산촌유학센터에 신청한 아이들은 6개월에서 1년간 산위의 마을 체험을 한다. 마을 아래 보발분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방과 후 교육과 숙식은 마을에서 이뤄진다.

장씨는 대학졸업 후 지난해 1월 산촌유학 선생님으로 다시 산위의 마을에 들어갔다. 어린 시절 어른들을 통해 마을에서 경험한 것들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장씨는 “아이들과 함께 자그마한 농사일과 가축 돌보기, 악기연습 등을 한다”며 “다시 도시로 돌아갈 아이들에게 자연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고, 아이들 서로 간의 관계를 깊이 맺어주고 싶다”고 소망했다.

기자가 방문한 12월 23일에는 성탄을 맞아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선물할 묵주를 만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묵주 알을 꿰는 아이들 옆에서 함께 묵주를 만드는 장씨를 바라보며 마을 어른들은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김정하(베네딕토·56) 가족대표는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산위의 마을도 젊은이들이 귀하다”며 “청년 장길산의 존재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면 공동체 전체가 젊어지면서 활력이 생기고, 또 그 친구들에게는 신앙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전해져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마을 공동체 식구들은 김 대표와 같이 장씨를 향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입을 모았다.

한편 성탄을 맞아 마을 식구들은 자체적으로 성탄 특송을 준비했다. 이번 특송에서 지도를 맡은 장씨는 “피아노 반주는 했지만, 지도를 해 본 경험은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다”며 “하지만 공동체의 지지와 격려로 잘 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서로 간의 지지와 격려가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모여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자체로 기쁘고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고 밝혔다.

산위의 마을 설립자이자 대표인 박기호 신부(서울대교구)는 “오늘날 우리는 삶과 노동이 분리되고, 비혼과 출산 문제 등으로 고립되고 단절된 시대를 살고 있다”며 “이런 시대에 청년이 전통적 삶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맥을 잇는다는 것은 시대의 치유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어린 시절부터 길산이의 삶을 보면서, 또 함께 사는 공동체 식구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장씨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지 모르겠지만, 마을에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대 간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동체들이 집단적 기억을 가지고 있음을 내포합니다. 그리하여 각각의 세대는 이전 세대의 가르침을 받아 다음 세대에게 그 유산을 물려주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사회를 굳건히 다지는 기틀을 놓습니다.”(권고 191항)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여정을 걸어간다면, 우리는 현재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으며 거기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함께라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우고 마음이 따뜻해지며 복음의 빛으로 감화되어 우리의 손에는 새로운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권고 199항)

성탄을 맞아 ‘산위의 마을’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장길산씨는 마을 아이들, ‘산촌유학생’들과 함께 묵주를 만들고 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