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장애인 친구들에게 배우는 삶 / 이선이

이선이rn(매임데레사·제1대리구 율전동본당)
입력일 2019-12-30 수정일 2019-12-31 발행일 2020-01-05 제 317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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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는 지적자폐성장애인거주시설 ‘둘다섯해누리’에는 80명의 천사들이 살고 있습니다.

신체 나이는 성인이지만 아직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 어린이처럼 자기들만의 방식과 생각대로 매일매일을 생활하고 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아침 통근버스에서 내리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달려와 “안녕히 주무셨어요?”하며 손잡아줍니다. 어떤 친구는 “델몬트 사줄 거에요”라며 환심을 사기도 합니다. 이렇게 줄줄이 인사 세레모니를 받고, 아침기도와 국민체조도 함께 하며 하루를 시작하지요.

그러나 이 천사들이 미운 일곱 살 아이들처럼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때는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만났을 때처럼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투명한 물 잔에 물이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어느 틈엔가 와서 쏟아버리기도 하고, 책상 위에 있던 간식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낚아채 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담당 선생님에게 푸념하듯이 그 곤란한 상황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한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저 친구 집이잖아요…”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왜 여기 있고, 누구를 위해 이곳에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원장 신부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저 친구들의 집인데, 우리가 푸념할 일은 아닌데, 내 아이도 간식을 마음대로 먹고 즐기며 생활하는데,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나의 일을 방해한다고 툴툴거렸구나’라는 마음에 미안해졌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오후에는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원장 신부님께서 “우리 친구들 영혼이 맑으니 하느님께 기도드리면 더 잘 들어 주실 것”이라 하시며 ‘평화의 모후 묵주기도단’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열 명 정도의 친구들과 함께 우리나라를 위해, 가정을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지난 금요일 5시 20분부터 묵주기도를 시작하려 하자 한 친구가 “오늘은 아기 예수님을 위해 기도해요. 지금은 대림 시기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대림 시기동안 계속 환희의 신비를 바치며 ‘이 친구들이 이해를 할까?’라는 마음에 그저 일과 중의 하나로 생각했던 이 시간을 그들은 매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묵주기도를 드리는 모습 속에서 진심으로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심정을 보았습니다.

장애인 친구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쓸모없는 인간을 만들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이들보다 우월하다는 교만함을 반성합니다. ‘내가 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빠져나와 ‘기도문 하나라도 정성을 다하는 신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선이rn(매임데레사·제1대리구 율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