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크리스마스 선물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19-12-24 수정일 2019-12-24 발행일 2020-01-01 제 3176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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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전 세계의 구성원들이 기억할 만큼 의미 있는 날입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 본 북쪽 개성 시민들의 경우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전구들을 매달아 놓았을 때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상당수 북쪽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의 유래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할 것입니다.

북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보다는 자국 정치 지도자들의 생일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제한돼 있기도 해서 크리스마스보다는 태양절(김일성 생일, 4.15.)이나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2.16.)과 같은 날을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이 날을 국가적 명절로 지정해 휴식을 취했고 여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날을 전후로 대규모 공연이나 체육행사를 하고 때로는 열병식을 하거나 새로운 무기체계를 선보이며 국제사회를 향해 자국의 군사력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북 외무성 리태성 미국 담당 부상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저로서는 상당수 북쪽 사람들이 잘 모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단어를 써서 흥미로웠고 그 선물이라는 것이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행동임이 예상돼 놀랐습니다. 북의 강경한 입장은 스스로 정한 협상시한인 ‘연말’이 다가오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련 보도 내용을 보니 ‘자력부흥, 자력번영의 장엄한 새 시대’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12월초 백두산에 오를 때는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노선’, ‘자력갱생의 불굴의 정신력’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표현상으로만 보면 내부적으로 점차 새로운 결의를 다져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물’은 무기체계의 시험과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기의 온갖 노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코헬 3,13)입니다. 진정한 선물의 의미에 맞게 북미 모두 좋은 결과물을 내왔으면 합니다. 마침 12월 16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국의 비건 대표가 “타당성 있는 단계” 등과 같이 북이 언급해 왔던 접근법을 수용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결의안 초안을 12월 11일에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현 상황을 해소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합쳐져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인 남북 그리고 평화와 화해를 바라는 국제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