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아름다운 꿈, 성야(聖夜)!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9-12-24 수정일 2019-12-24 발행일 2020-01-01 제 3176호 2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12월! 몸과 마음이 가장 바쁜 달입니다. 부대에서는 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 사업계획을 작성하느라 연일 야근을 했습니다. 성당에서 또한 12월에 들어서면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제단 앞에 아기 예수님 구유를 만들고, 성모동산을 장식하곤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성모회는 성탄절 미사 후에 병사들에게 줄 간식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대림 제3주 미사를 마치고, 신부님과 성탄 행사와 간식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신통치 않았었죠. 그때 한 자매님이 “특별한 날이니 인스턴트식품 대신 따끈한 어묵에 비빔밥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일순간 성모회원들의 얼굴이 경직됐습니다. 너무나 얼토당토않기 때문입니다.

‘몇 명 되지 않는 자매님들이 100명 가까이 되는 병사들의 비빔밥을 준비한다.’ 버거운 일이었지요. 그때 그 자매님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얘기했습니다. “밥과 어묵국은 성당에서 준비하겠습니다. 비빔밥에 들어갈 나머지 재료들은 한 가정에 한 가지씩 준비해 오는 겁니다. 소고기 고명 같은 비싼 재료는 두세 가족이 해 오면 되지 않을까요.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신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끝내 불만을 참아내고 자원해서 한 가지씩 정했습니다.

성탄절 행사는 법사님과 일부 불교신자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거룩하게 진행됐습니다. 미사를 마치자, 자매님들이 준비해 온 나물과 고명을 얹은 비빔밥이 장병들에게 분배됐습니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따끈한 어묵국을 한 그릇씩 떠주었습니다. 과연 병사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정성껏 비빔밥을 준비한 성모회 자매님들이 분주한 손놀림 중에서 반응을 살피느라 얼마나 조심스럽던지요.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병사들이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신부님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자정이 가까올 무렵, 병사들은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은 식사 후 다과를 나누며 비빔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메뉴를 제안한 자매님도 엄지척을 받았지요. 나란히 앉은 신부님과 법사님의 덕담, 자매님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형제님들의 흥분된 목소리 등 성탄의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특히 이날은 종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 된 날이었습니다. 밖은 영하의 혹한이 몰아쳤지만 친교실은 사랑의 열기로 뜨겁게 달궈졌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신 그 성탄의 밤! 예수님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성탄 밤의 기도’에서 “빛의 예수여, 당신께 받은 빛이 꺼짐 없이 우리 안에 타오르게 하소서. 매일의 삶 속에서 당신의 성탄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의 빛이 타오르지 않았을까요. 그때의 아름다운 모습이 마치 어젯밤 꿈처럼 아련하게 다가오는 밤입니다.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