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사랑이 충만한 나자렛의 성가정

김창선(요한 세례자)rn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19-12-24 수정일 2019-12-24 발행일 2020-01-01 제 3176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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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제1독서(집회 3,2-6.12-14) 제2독서(콜로 3,12-21) 복음(마태 2,13-15.19-23)
성가정, 예수님 모시고 하느님 뜻 실천하는 보금자리
신앙학교이자 사랑과 친교로 일치 이루는 가정교회
현 시대, 빈번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등 심각하지만
나자렛 성가정 본받아 그리스도의 향기 서리게 해야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들의 마음을 다스립니다. 교회는 성탄 팔일 축제를 지내면서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로 기립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이 나자렛의 성가정을 본받아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사랑이 충만한 보금자리로 거듭나기 위함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가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고, 일치의 교회를 이루며, 사랑을 배우는 학교임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성가정은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감사하고, 사랑의 일치로 친교를 이루는 기쁨을 누리며, 기도하는 가운데 복음의 일꾼을 기르는 좋은 못자리입니다.

먼저 성가정은 예수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의 보금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분(「가톨릭 교회 교리서」 210항)이십니다. 헤로데는 빛나는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로부터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들은 뒤 정적을 없애 권좌를 지키려고 베들레헴 일대에 두 살 이하의 모든 남아를 죽여 버리라는 사악한 명령(마태 2,16)을 내립니다.

하느님께서 성가정을 보호(마태 2,13.20)하십니다. 주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일러줍니다. 요셉은 밤길을 나섭니다. 산모인 마리아에게도 큰 고통과 시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집트는 유다 백성의 전통적인 피난처(1열왕 11,20; 예레 26,21)이고, 로마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안전한 곳입니다. 헤로데가 죽자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다시 나타나 이집트에서 불러냅니다.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의 ‘이집트로의 피신’.

헤로데는 죽기 전 다스리던 왕국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유다 지역은 헤로데처럼 잔인한 아르켈라오스가 다스리는 곳이기에,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때 요셉은 꿈에 지시를 받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갈릴래아에 자리를 잡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삼십 년 동안 갈릴레아 호수 서쪽 24㎞ 떨어진 나자렛 고을에 사셨기에 ‘나자렛 예수님’으로 불립니다.(마태 2,23; 판관 13,5; 16,17)

나자렛 성가정에는 성자와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십니다. 참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랑과 성덕의 샘이요,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심이십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가정의 어머니십니다. 동정녀의 순종과 마음에 간직한 희생정신이 사랑과 평화의 성전을 이룹니다. 의롭고 정결하신 성 요셉은 성자와 마리아를 충실히 보호하신 가정생활의 자랑이십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가정입니다.

다음으로 성가정은 친교로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가정교회(「가톨릭 교회 교리서」 1655)입니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제1독서는 주님의 자녀에게 주님을 섬기는 덕성(믿음, 소망, 사랑)을 넘어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넷째 계명)을 일깨웁니다. 장성한 자녀들은 힘자라는 데까지 부모의 노후와 질병, 외로움과 곤궁함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선한 일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자녀의 죄를 용서받는 보상(집회 2,3.14)이 주어집니다.

제2독서(콜로 3,12-21)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가정 윤리를 일깨워줍니다. 주님께 선택된, 사랑받는 사람은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연민, 친절, 겸손, 온유, 인내로 대합니다. 불평할 일도 참고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듯이 서로 용서합니다. 가족이 함께 주님께 올리는 찬미와 찬양이 아름답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시편 상해’에서 성가는 두 배의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친교의 끈입니다. 주님 사랑에 충실하면 가족도 내 몸처럼 사랑합니다.

끝으로 성가정은 참된 인성교육의 신앙학교(「가톨릭 교회 교리서」 2226)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사랑이 충만한 가정생활을 하는 가운데 사랑과 환대를 바로 배울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주님의 뜻을 따라 사랑과 친교, 겸손과 인내와 용서를 처음으로 체험하는 장소도 가정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사신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은 자녀는 올곧게 자라 복음의 도구가 됩니다.

오늘날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바라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못합니다. 혼인 생활에 실망과 고통, 증가하는 이혼율, 빈번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무의탁 노인, 실직 가정, 미혼모의 발생과 낙태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가정은 생명과 사랑의 요람(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 212항)입니다. 모든 가정이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아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경과 사랑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새 복음화의 지름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눌 때 가족의 유대는 공고해집니다.

가정의 행복은 공동선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친교와 기도로 일치를 이루는 성가정은 사랑과 평화의 보금자리입니다.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가난하고 고통 받는 가정에도 사랑이 꽃피어 그리스도의 향기가 서리게 빌어주소서.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rn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