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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르포] 떡을 빚으며 새해 맞는 어르신들 성남시니어클럽 ‘쿵떡’ 사업장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12-23 수정일 2019-12-24 발행일 2020-01-01 제 317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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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삶에 활력이 팍팍~
맛있다는 말에 뿌듯
하루가 신나요

“어이고~ 맛있겠다!” 시루를 덮은 천을 걷어내자 김이 한가득 쏟아져 나왔다. 하얀 김과 함께 주방을 가득 채운 갓 찐 떡의 냄새에 “맛있겠다”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떡을 바라보는 어르신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오른다. 따끈따끈 맛있는 떡을 빚으며 새해를 맞는 성남시니어클럽(관장 조성갑 수녀) 쿵떡 사업장(이하 ‘쿵떡’)의 모습이다.

■ 아르신의 덕담이 담긴 떡

“옛날에 시골에서 떡은 귀한 음식이었어요. 그 마음으로 귀하게 만들죠. 여기 떡은 다 맛있어요.”

떡을 포장하던 김강숙(72) 할머니가 ‘쿵떡’의 떡 자랑을 했다. 김 할머니는 그러면서 “재료가 좋으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며 맛있는 떡의 비결을 귀띔했다. ‘쿵떡’의 떡은 100% 국산 쌀로 만든다. 게다가 방부제, 유화제, 화학조미료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천연재료를 사용한다.

방부제나 유화제가 들어가지 않은 떡이다 보니 그날 만든 떡은 그날 먹어야 한다. ‘쿵떡’의 떡은 최소 1일전에 주문접수를 통해 성남시 내 지역에 배송하고 있다. 그래서 ‘쿵떡’에서는 매일 오전 6시부터 떡을 만들고 있다. 게다가 한 번에 찐 떡을 모두 소진해야 하다 보니 1회 주문량도 10㎏이상 주문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좋은 재료를 사용해 떡을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쿵떡’에서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떡을 보이며 웃고 있다.

“이건 어린이집에 보낼 떡이에요. 우리 막내딸 손주가 4살인데, 손주에게 떡을 준다는 생각으로 떡을 만드니 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5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주성임(아가다·69·수원교구 신흥동본당) 할머니가 이야기를 보탰다. 2008년 시작된 ‘쿵떡’은 어르신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해 노년의 삶에 의미를 찾아주고, 동시에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시장형 노인일자리사업이다. ‘쿵떡’에서 만드는 떡의 주 거래처는 인근의 어린이집, 복지관 등의 시설이다. 어르신들은 어린이들 그리고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건강하길 기원하면서 떡을 만든다. 자녀들에게, 손주들에게 하는 덕담이 그대로 떡에 담겼다.

“할머니네 떡이 제일 맛있어요”라는 손주의 말에 보람을 느낀다는 주 할머니는 “새해 소망은 늘 가족들 건강”이라며 “떡을 먹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고 전했다.

떡 만들기에 여념 없는 어르신들과 '쿵떡'에서 만든 제품들.

■ ‘쿵떡’에서 빚은 새 희망

떡의 맛있는 기운이 달아날 새라 어르신들의 손이 바빠진다. 포장하고 차곡차곡 상자에 담는다. 요즘이야 떡 만드는 일도 많은 부분 기계가 담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떡 만드는 일은 상대적으로 몸을 쓸 일이 많은 일이다. 새해를 맞아 떡국용 떡을 비롯한 여러 떡 주문량이 많아 시간외 근무까지 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도 작업에 호흡을 맞추는 어르신들의 움직임엔 오히려 활력이 느껴졌다.

“여기 오면 힘이 나죠. 그럼!”

‘쿵떡’에서 벌써 10년째 일하고 있는 정봉진(79)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장사를 비롯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며 건축업계에서 일하다 은퇴한 정 할아버지다. 전쟁 후 아무 것도 없던 막막한 시절 산전수전에 모진 풍파를 견디며 살아온 정 할아버지지만 은퇴 후의 시간은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정 할아버지는 “은퇴 후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돈도 없으니 사람도 만날 수 없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 “그러나 노인일자리를 알아보다 ‘쿵떡’에 와서 일을 하며 용돈 벌이도 하고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서 삶에 즐거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정 할아버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2%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이어 2017년에는 14.2%가 되면서 고령사회가 됐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은퇴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단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쿵떡’에서 일하는 어르신은 10명가량. 어르신들 모두 각기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분들이다. 하루 4시간씩 주 2~3회 정도를 돌아가면서 일하다보니 각 어르신들에게 돌아가는 급여는 그렇게 크지 않다. 사실 일자리라고 보기보다는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형태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얻는 것은 급여 그 이상의 것, 삶의 의미와 보람이다. 떡은 어르신의 손을 통해 어린이와 여러 시설로도 전해지지만, 또 어르신들 자신에게도 좋은 것이 돼준 삶의 선물이다.

정 할아버지는 “6·25 전쟁이 끝나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새해면 형님들이 떡매질을 했는데, 그 때 얻어먹은 뜨끈뜨끈한 떡만큼 맛있는 음식이 없었다”며 “그런 떡을 만들어서 전하는 일이 보람되고 긍지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성남시니어클럽 관장 조성갑 수녀는 “어르신들이 잘 하실 수 있는 전통 떡을 생산해 판매함으로써 어르신들의 노년의 삶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사시도록 도와드리기 위해 ‘쿵떡’을 운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협동하고 소통하면서 즐겁게 일 하실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를 개발하는 것이 성남시니어클럽의 과제”라고 말했다.

※문의 031-735-6333 성남시니어클럽, www.sncsc.or.kr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