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48) 얼음이 얼었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9-12-17 수정일 2019-12-17 발행일 2019-12-25 제 3175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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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이 길게 이어지는 듯 겨울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

골짜기에 들면 을씨년스럽고 메마른 풍경에 물소리만 가득하다.

지난해 이맘때쯤에는 골짜기는 얼어붙고 허옇게 쌓인 눈 위에 짐승들의 발자국이 길게 남아 있곤 했었다. 추운 날씨가 여러 날 이어지고 나서야 골짜기에 초록빛 물 못이 얼어붙었고 흐르는 물은 차가워진 돌에 하얗게 엉겨 붙어 얼기 시작했다.

푹푹 빠지는 눈을 헤치며 산양을 찾아 헤매던 날들이 아득한 일처럼 느껴질 만큼 눈도 제때 내리지 않는다.

추위도 덜하고 눈도 적어진 겨울이 이어지면서 마음조차 메마른 느낌이 든다. 이런 날씨가 야생동물들에게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닌 듯 여겨지는 것은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튼튼한 녀석들이 살아남아 대를 이어가야 멸종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겨울이 깊어서야 눈이 쌓이고 눈 위에 찍힌 야생동물의 발자국 속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없는 삶에서 사랑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며 대를 이어 살아온 날들이 눈물겹다.

산양이 쉬었을 바위굴에 기어들어 따사로운 햇볕 속에 쪼그리고 앉으면 산양의 삶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쫓기며 살고 있는 슬픈 산양이 되곤 한다.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야 할 이 땅에서 사람들의 탐욕은 모든 생명의 삶을 결정하는 자연의 흐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기후변화는 기후위기가 돼 모든 생명의 삶을 옥죄고 있다. 지난 세대가 살아온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삶을 버리고 편리함을 좇아 살아온 우리들의 삶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지만, 그것조차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멈추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삶을 바꾼다고, 한 나라의 정책이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임에도 서로 딴청을 부리고 있다.

푸른 별 지구에 몸담아 살아가는 모두가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야만 멈출 수 있는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미세먼지 나쁨이라는 보도에 걱정만 앞설 뿐 나쁨을 좋음으로 바꾸기 위해 나서지 않는 것은 모든 희망을 포기하는 일이 아닌가. 어린 학생들의 절규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모든 꿈을 덮어버리는 일이 아닌가.

이미 시작된 자연의 역습은 안개처럼 미세먼지로 뒤덮인 지구에서 사람이라는 한 종을 거침없이 몰아낼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까닭은 자연에 대한 폭력을 멈추지 않는 우리의 탐욕이 삶 속에 너무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한겨울 골짜기에서 “얼음이 얼었다!”고 외치며 신기하게 여기게 될 날이 두려운 것은 멸종의 길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외침이기 때문이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