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019 사회사목 결산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박민규 기자
입력일 2019-12-17 수정일 2019-12-18 발행일 2019-12-25 제 3175호 1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일 갈등 속에 ‘참회와 정화’ 해법 제시… 인권수호 노력도
한일 주교회의 담화 각각 발표
평화 위한 올바른 방향·해결책 제시
남북 관계 개선 위해 앞장서며 국제학술대회와 기도운동 등 펼쳐
기후위기 대응 위한 노력도 촉구

2019년이 저물고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시작한 2019년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새로이 정립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이 내린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계기로 일본이 한국에 경제 보복을 가하면서 한일 관계는 갈등의 늪에 빠져 들었다. 한일 갈등은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남북 관계 역시 기대를 모았던 베트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된 후 사상 최초로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지만 한반도에 퍼질 듯 퍼지는 않는 화해의 기운은 어느 순간 멈춘 듯하다.

세상적 시각으로는 해답을 찾지 못하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교회는 빛과 희망을 담은 예언자적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특히 2019년 한 해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더욱 빛나듯 사회사목 분야에서 교회의 역할이 부각됐던 시기다.

■ 한일 갈등에 냉철하고 균형 있는 해법 제시

교회 안팎을 가리지 않고 올해 한국사회는 유례 없이 깊은 한일 갈등을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아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8월 15일 광복절, 한일 교회는 국가와 민족적 배경을 초월해 한일 갈등의 원인을 진솔하게 찾았다. 한국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배기현 주교와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회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가 각각 담화를 발표했다.

가해국인 일본교회를 대표해 ‘한일 정부 관계의 화해를 향한 담화’를 낸 다이지 주교는 일본이 가해국이라는 사실과 현재의 한일 갈등의 원인과 책임이 일본에 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 양국이 대립으로 치닫지 말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배기현 주교 역시 이에 화답하듯 ‘1945년 8월 15일, 새로운 질서, 평화를 향하여’ 제목의 담화에서 “한일 관계에서는 새로운 질서에 부응하는 올바른 길,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의 길을 다시 찾아야 한다”며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해 언제나 요구되는 필수적 전제 조건은 ‘참회와 정화’임을 우리는 믿는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 모두에게 대립과 갈등이 아닌 참회와 정화를 요청한 것이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강주석 신부)와 가톨릭신문사(사장 이기수 신부)가 공동주최하고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신부)가 주관한 제3회 국제학술대회 역시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으로 빼놓을 수 없다. 10월 9일 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한일 관계의 역사, 그리고 기억의 치유’를 주제로 열린 제3회 국제학술대회에는 한일 성직자들은 물론 러시아, 미국 등 해외 석학들이 참석해 한일 갈등 해결에 있어 종교계와 시민사회계의 역할을 제시했다.

■ 3·1운동 100주년의 참 의미 찾은 한 해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전국 대부분의 교구에서 기념미사와 심포지엄, 강연회, 공연 등이 열렸다. 100주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인에게는 뜻 깊고 자랑스런 역사이지만 한국교회 입장에서는 3·1운동에 소극적이고 더 나아가 신자들의 3·1운동 참여를 막았던 과오를 반성하는 시간을 보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가 올해 3월 1일 ‘3·1운동 정신의 완성은 참평화’를 주제로 발표한 담화는 이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김희중 대주교는 담화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고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또한 사회교리 주간을 기념해 12월 8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고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황경원 신부)가 주관한 세미나도 ‘한국사회 100년 역사 안의 교회(3·1운동·임시정부 100년)’를 주제로 삼았다. 기조강연을 맡은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3·1운동 당시 한국교회의 행적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민족화해를 향한 끊임없는 기도

주교회의는 올해 추계 정기총회에서 2020년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앞두고 2019년 12월 1일부터 2020년 11월 28일까지 1년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를 전국 모든 교구와 본당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 이면에는 한반도의 민족화해 여정이 순탄치 않고 활로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사정도 깔려 있다.

6·25전쟁 발발 69주년이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인 올해 6월 25일에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이기헌 주교) 주관으로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한반도 평화기원미사’를 봉헌했다. 2만여 명의 신자가 참석한 대규모 미사에서 참례자 모두는 한마음 한뜻으로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고 이기헌 주교는 ‘2019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호소문’을 애끓는 마음을 담아 발표했다. 특히 불과 5일 뒤인 6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바로 이어 남북미 세 나라 정상이 판문점에서 6·25전쟁 정전선언 66년 만에 한 자리에 처음 모였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기원미사’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올 하반기 들어 남북은 이렇다 할 교류협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에 더욱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 사형폐지, 노동 인권 노력 계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위원장 배기현 주교, 이하 사폐소위)는 교회 안팎으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앞장섰다. 우리나라는 2007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실질적 사형폐지국가’ 대열에 들어섰지만 사형폐지특별법은 지난 제15대 국회 때부터 발의됐음에도 단 한 번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돼 왔다. 배 주교는 “사형제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생명존중에 반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폐소위는 사형폐지와 종신형 입법화를 위한 입법청원 서명운동, 헌법소원, ‘사형제도폐지 기원 생명이야기 콘서트’ 등을 전개하며 사형폐지를 위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생명수호와 함께 인권을 위한 교회의 역할도 두드러졌다. 지난 4월 22일 콜트콜텍은 4464일간 이어진 국내 최장기 노사분쟁을 끝내고 사측과 합의를 이뤘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이주형 신부)와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양성일 신부)는 2011년 5월부터 매주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와 함께하는 미사’를 봉헌하며 노사 잠정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이외에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위한 활동에도 한국교회는 힘을 기울였다.

■ 환경사목 중요성 더욱 부각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오늘날, 교회는 국제기구와 환경 단체 등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30여 개 가톨릭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가톨릭 기후행동은 9월 21일 서울 대학로에서 대규모 미사를 열고 공동의 집을 지키기 위해 기도했다. 아울러 정부에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5개 종교 환경단체 연합체인 종교환경회의(상임대표 양기석 신부)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 백지화를 계속해서 요구한 끝에 9월 16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백지화를 이끌어냈다.

주교들도 11월 7일 생태마을인 충북 영동 백화마을을 현장체험 하며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기 위한 뜻에 동참했다.

6월 2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거행한 한반도 평화기원미사 중 8개 교구 대표 신자들이 한반도기를 봉헌하고 있다.

11월 7일 주교 현장체험으로 충북 영동 백화마을을 찾은 주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화마을 전경. 가구별로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배기현 주교(왼쪽에서 네 번째)가 2월 12일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열린 사형제도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