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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당신의 섭리는 무엇입니까? / 김형태

김형태(요한) 변호사
입력일 2019-12-10 수정일 2019-12-10 발행일 2019-12-15 제 317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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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하고 불어도 커다란 연초록색 거미는 꼼짝도 않습니다. 죽었군. 마당 한구석 배롱나무 가지 사이 거미줄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렸고 낙엽들만 매달려서 바람에 대롱거립니다. 성큼 겨울이 다가오면서 녀석의 시대는 갔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미물이지만 미동도 않는 그 죽음을 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여름내 하루살이며 파리, 벌들을 수없이도 꽁꽁 묶어 호시절을 누렸는데.

하지만 포박돼 진을 빨려야 하는 저 희생자들 입장에선 얼마나 무섭고 끔찍했을까. 그래도 거미도 먹고 살아야겠지요. 거미와 하루살이 중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요. 전체이신, 저 거미며 하루살이를 내신, 그래서 그들 안에도 계신 당신의 섭리를 감히 이 아둔한 머리로는 가늠할 길이 없습니다.

얼마 전 서강대 총장을 지낸 예수회 소속 박홍 신부님이 돌아갔습니다. 그분의 삶에 드리운 하느님의 섭리는 또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신부님은 1991년 노태우 군사정권에 반대해 청년 학생들이 목숨을 버리던 ‘분신 정국’ 때 ‘저들 죽음의 배후에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발언해서 아까운 청춘들의 희생을 폄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죽고 다치고 붙잡혀 가던 이들을 도와주던 내 입장에선 참으로 가슴 아픈, 듣기 싫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던 그 분이 나에게 천군만마가 된 적도 있습니다. 2003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송두율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을 변호할 때 일입니다.

당초 국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송 교수를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는데, 귀국 며칠 뒤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 석학’은 하루아침에 ‘해방 이후 최대 간첩’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국정원의 형식적인 조사 과정에서 갑자기 조선노동당 가입원서를 쓴 적이 있다는 진술을 한 겁니다. 당시 북에 입국하는 모든 외부인들에게 노동당 가입원서는 일종의 통과의례였습니다.

노동당 가입원서를 쓴 사실이 알려지자 온 나라가 송 교수를 욕했습니다. 진보운동 쪽에서도 그를 진보를 말아먹은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나에게 변론에서 손을 떼라고 충고했습니다. TV에서는 ‘빨갱이’ 송두율 옆에 내 얼굴도 매일 나왔습니다. 심지어 사무실 옆 방 고(故) 이돈명 변호사님도 “자네 그 변론 그만 두소.” 하고 내 걱정을 하시던 마당이었는데, 나는 그럴수록 변호인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박홍 신부님이 전화를 하셔서 “내가 잘 식별을 해 보니 송 교수는 빨갱이가 아니다”면서 적극 돕겠다는 거였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곳에서 온 도움의 손길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 후 여러 공개석상에서 송 교수를 감쌌습니다. 빨갱이가 아니라서 돕겠다는 거였지만 어쨌든 온 나라가 비난의 광풍에 휘말려 있을 때 선뜻 돕겠다고 나선 신부님이 참 고마웠습니다. 곡절 끝에 결국 송 교수는 전부 무죄를 받았지요.

다른 예수회 신부님들처럼 박 신부님도 늘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잘 ‘식별’해야 한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일’은 참 쉽지가 않습니다. 신부님도 그랬겠지요.

이 세상은 옛적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쭉,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거미가 파리를 잡아먹고, 사람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힙니다. 이미 핵무기며 미사일 수만 개를 가진 미국이 시원치 않은 핵 미사일 몇 개에 제 생존을 건 조그만 북한을 상대로 을러댑니다. 국민들로부터 얻은 표 숫자대로 국회의원 의석수를 배분하자는 당연한 주장을 영구집권 시도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만사에 법의 칼날을 들이대는 검찰은 총 천연색 세상을 단순 흑백 사진으로 만듭니다. 젊은이와 기성세대가, 여성과 남성이 서로 대립하고,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형량을 더 높이라 아우성입니다.

당신이 내신 이 세상이 어찌 이리 부조리하고 동정심이 없다는 건지요. 우리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생기면 당신 섭리라고 제 논에 물대기를 하고, 내가 남을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옛날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은 거지요.

당신께서 거미와 하루살이를 함께 내신 그 섭리는 무엇인가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