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빛을 맞이하는 사람들 (하)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손승희씨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19-12-10 수정일 2019-12-10 발행일 2019-12-15 제 317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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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신 하느님 만나는 ‘빛의 창’을 빚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전해진 빛
기도와 묵상에 도움되길 희망
작업할수록 절제되고 단순해져
고요한 성전 안, 하느님과 단둘이 만나는 이곳에서 빛이 말을 건다. 발과 손, 그리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빛이신 하느님께서 내 곁에 머문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는 손승희(손소벽막달레나·52)씨는 하느님이 선사한 선물인 빛을 다룬다. 유리를 만지고 다듬어 완성된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입힌다. 그 안에서 빛과 함께 빚어진 기도는 더욱 큰 울림으로 세상을 밝힌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빛을 맞이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손승희씨를 만났다.

■ 빛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다

한국에서 조소과를 나와 로마로 건너간 손 작가는 그곳에서 신앙과 만났다.

“조각을 공부하기 위해 떠난 로마 유학이었지만, 그곳 한인성당에 다니면서 가톨릭을 알게 됐어요. 20대 초반에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던 저는 당시 신앙에 대해 깊이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세례를 받게 됐고 그분의 눈을 통해 신앙의 깊이를 느끼게 됐죠. 가톨릭과 인연이 시작된 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 상업공방에서 일하며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단순히 장식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으며, 빛의 형태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한 손 작가의 노력은 20여 년간 이어지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안에서 기도하며 생각하고 음미하는 과정을 통해 빛이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손승희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손 작가(가운데)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 중인 모습. 손승희 작가 제공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의 작업이에요. 투명성을 지닌 유리에 투과된 빛을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빛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죠. 그리고 이 작업을 하면서 빛을 만드는 하느님, 즉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을 매번 느끼곤 합니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른 옷을 입은 빛들은 우리에게 각자 다른 이야기를 건네죠. 그것은 하느님만이 결정하실 수 있는 것 같아요.”

손 작가가 작업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테인드글라스가 걸릴 현장을 살피는 것이다. 시간에 따른 빛의 모습을 알기 위해 하루 동안 그곳에 머물며 채광을 연구한다. 그리고 빛의 퍼짐을 염두에 두어 도안을 완성한다. 망치로 깬 판유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일부가 된다. 두께와 모서리의 단면에 따라 빛이 달라지기 때문에 손 작가는 이 모든 과정에 심혈을 기울인다.

“하느님이 만든 빛을 우리가 잘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그 창을 다듬고 재단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전해진 빛이 누군가의 기도와 묵상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 빛이 되다

‘말씀의 씨앗’, ‘신앙의 씨앗’ 등의 주제로 작업했던 손 작가는 몇 년 전부터 ‘빛이 되다’에 주목했다. 수많은 빛을 보고 다루는 일을 했지만 정작 그가 궁금했던 것은 ‘빛의 실체’였다. 눈으로 보이는 밝음이 아닌 진짜 ‘빛’을 찾고자 그는 빛이 되고자 했다.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고민에서 저의 작업이나 삶의 방향이 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고 작은 무엇이라도 행동할 때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땅에 정착해 50년 넘게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강칼라 수녀를 만난 손 작가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진짜 빛을 경험했다. 강 수녀에게 전주교구 동혜원공소가 낡은 시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손 작가는 그 길로 바로 재능기부에 함께할 학생들을 모아 ‘놀자 재능기부’를 꾸렸다. 그리고 4개월에 걸친 작업을 마치고 낡은 공소에 새로운 빛을 불어넣었다. 2012년 작업을 마친 동혜원공소는 빛이 되고자 했던 한 작가의 노력과 정성으로 아름다운 빛을 품게 됐다. 이어서 2014년과 2019년 각각 대전교구 갈매울공소와 전주교구 평촌공소에도 재능기부로 의미있는 작업을 마쳤다.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울 수 있지만, 의외로 쉽게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버려진 쓰레기를 줍거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양보하는 등 삶에서의 작은 실천이 빛의 자녀가 되는 방법이 아닐까요?”

인터뷰를 위해 손 작가를 만난 날은 주일이었음에도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신부님, 제가 드린 도안 그대로 만들 필요 없어요. 신자들이 원하시는 대로 자유롭게 유리를 붙이셔도 좋아요.”

오래된 성당 창문을 재단장하고 있다는 마산교구 남성동본당은 손 작가의 제안으로 신자들이 직접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여건상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말에 손 작가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처음 스테인드글라스를 만져본 탓에 서툴고 실수가 많지만, 손 작가는 정성을 다하는 신자들을 생각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꼼꼼히 챙기고 조언했다.

지난주 첫 미팅을 다녀온 손 작가는 “성당 창문을 예쁘게 만든다는 소식에 어르신들이 장갑을 끼고 성당 안에 빼곡히 모이신 모습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었다”며 “순간순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저는 이처럼 빛이신 하느님을 만난다”고 말했다.

빛을 만나는 순간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그 결과보다는 과정이,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얻는 메시지가 더욱 중요하다. 손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시간이 흐를수록 절제되고 단순해졌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그 과정에 담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군더더기를 빼고 가벼워졌을 때 우리는 그 안에 있는 본질을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빛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날 거예요. 신자들과 함께 만든 유리창이 보기에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찾고자 한다면 의외의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본 신자들도 생각하고 음미하는 과정을 통해 빛이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손승희 작가가 ‘말씀의 씨앗’ 주제로 작업한 전주교구 어양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