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마음의 준비 / 손효진

손효진rn(비아·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병리과)
입력일 2019-12-10 수정일 2019-12-10 발행일 2019-12-15 제 317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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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의 첫날,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잠시 어린 시절의 묵상에 빠져 봅니다.

그때 저는 성가대를 하면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새우고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성가대원들과 함께 골목과 집들을 돌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요즘처럼 아파트 숲이 많을 때가 아니어서 돌아다니다 신자들을 만나면 먹을 것도 주시곤 하시던, 그래도 정이란 것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골목길을 주황색 가로등이 밝게 비추고 있고, 성가를 부르며 뽀송뽀송 쌓인 눈 위에 첫걸음을 내디딜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요한 새벽, 찬 공기 속에 고요하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지던 새벽하늘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새벽 성가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은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을 좋은 옷도 없었고, 10㎝ 이상 쌓인 눈을 계속 밟고 다녀도 물이 새지 않는 신발도 없었고 따뜻한 손난로도 없던, 모두가 지금의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데도 그 시절은 부족했던 것들 때문에 불행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도와 전례, 성가에 성당 다니는 것이 너무도 재밌고 그저 즐거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에게 기다림은 그때부터 쭉 계속되어 오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도 역시 성당을 빠지지 않고, 매일 기도도 드리지만 영적으로는 더 성장하지 않고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오시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듯 흔쾌히 “네”하고 대답하며 그분을 따라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입니다.

‘열처녀’ 비유처럼,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며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마태 24,50) 오실지 모를 그분을 기다리며, 필요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세상을 쥐어 잡고 버리지 못해 더 좋은 것을 잡지 못하는 원숭이처럼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목숨처럼 잡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는 대림시기입니다.

내안의 것을 버리고 그분을 잘 맞이할 수 있게 한 번 더 마음의 준비를 해 봅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손효진rn(비아·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병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