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빛을 맞이하는 사람들 (중) 사진으로 치유하는 임종진 사진작가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19-12-03 수정일 2019-12-04 발행일 2019-12-08 제 3173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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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빛, 사람이 우선인 사진을 찍습니다”
빈민촌엔 절망만 있지 않아
사진 속 사람들의 존엄성 봐주길
지난해 북한 풍경 찍은 사진전도
사회적 기업 활동 통해 상처 치유
사진은 카메라를 사용해 사물의 빛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렌즈를 통해 전해진 이미지들은 밝은 빛이 될 수도, 칠흑같은 어둠이 될 수도 있다. 빛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 카메라 렌즈를 통해 빛을 포착하는 사진작가 임종진(스테파노·51·서울 성산동본당)씨를 만났다.

■ 인간의 존엄성을 포착하는 사진작가

사진작가 임종진씨가 사진을 찍으러 가기 전 가장 공들여 하는 일은 옷차림을 살피는 것이다. 비싸거나 화려해 보이는 옷은 피하고, 선글라스도 쓰지 않는다. 현장에 가서도 바로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카메라를 든 이방인을 경계하는 현지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며칠을 보내고, 때론 1년이 넘게 그들과 함께했다. ‘친구가 되는 것.’ 그가 사진을 찍을 때 잊지 않는 원칙이다. 때문에 사진에 담긴 인물 한명 한명은 모두 임씨와 친구가 된 이들이다. 장난을 치고 일상을 공유했던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기에 편안함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일간지 사진기자로 13년간 일했던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전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기자는 분쟁이 있거나 유명인이 등장하는 현장, 즉 큰 담론이 존재하는 곳에 있어야 하고 그런 사진들을 찍습니다. 그런데 저는 큰 담론보다는 개인의 작고 소소한 일상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들의 표면적인 모습이 아닌 그 안에 있는 존재성을 포착하고 싶었고, 사진기자를 그만둔 계기가 됐습니다.”

2006년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2년 뒤 그는 캄보디아로 떠났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봉사단 JSC(Jesuit Service Combodia)와의 인연으로 1년 반 동안 캄보디아에서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는 달팽이 사진관을 열었다.

“사진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캄보디아 행을 결심했지만,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며, 제가 주는 방식이 과연 맞는지 성찰하게 되더군요.”

“그간 만났던 사람들이 빛이었다”고 말하는 임종진 사진작가. 임 작가가 2008년 캄보디아에서 활동할 당시 모습. 임종진 사진작가 제공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사진이나 영상을 ‘빈곤포르노’라 부른다. 야위고, 힘없는 제3세계 아이의 사진은 구호단체에서 모금활동을 펼칠 때 흔하게 쓰인다. 실제로 캄보디아 빈민촌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임 작가는 그들의 삶이 절망 안에만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들의 삶은 우리가 보기에 가난할지언정, 가난이 그들의 삶을 옥죄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고, 사진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며 “저는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그들이 얼마나 존엄한가를 사진으로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임 작가가 찍은 쓰레기 매립장에서 쓰레기를 줍는 부부의 사진에서는 무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내를 위해 점심을 서둘러 먹고 파리를 쫓아주는 남편의 모습은 사랑하는 두 부부의 모습일 뿐이다. 재개발로 집을 잃은 주민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도 이웃의 밥 한 끼를 챙기고, 아이는 쓰레기를 줍다 먼지가 묻은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힘듦과 아픔을 공유하는 순간 그 무게는 덜어지고, 행복과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사진에 오롯이 담겼다.

임 작가가 캄보디아에서 얻은 명제는 ‘사람이 우선인 사진을 찍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는 ‘사연전달자’가 되길 원했다.

“제가 전시를 하면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은 저에게만 주목을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아닌 사진속의 사람들을 바라보길 원했고, 그런 이유로 전시되는 사진에 그 상황에 대한 글을 세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제가 본 누군가의 삶의 가치를 다른 분들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람이 빛이다

지난해 열린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사진전도 ‘사람이 우선인 사진’을 찍고자 했던 임 작가의 가치관이 실현된 자리였다. 한국인 사진작가가 북한의 풍경을 찍어 공개한 최초의 사진전이기도 했지만 ‘북한’이 아닌 ‘사람’을 담았기에 울림이 컸다.

“1998년 사진기자로 처음 북한에 취재를 갔는데, 저는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삶의 단편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북측의 허락을 받고 사람들의 모습을 찍었어요. 참 신기한 게,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년 남성들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우리네 아버지 모습이 생각났죠. 큰 아이는 엄마가, 막내는 아빠가 챙기는 모습도 남한과 다르지 않았어요. 우리와 사는 게 똑같더라고요, 감동적이게도 말이예요.”

이념과 편견의 벽을 허물고 사람의 존엄성을 먼저 생각한 그의 시선은 그런 사진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런 임 작가의 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그들의 존엄성을 기억할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가르침은 작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그가 일련의 활동 끝에 도달한 곳은 ‘공감아이’였다. 예비 사회적 기업인 ‘공감아이’에서는 사진을 통해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이들의 자존감 회복을 돕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피해자들과 고문의 현장을 찾아 사진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 발달장애인, 성매매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말과 행동을 하곤 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의 마음을 사진으로 치유해주고자 한국으로 돌아와 사진심리상담을 공부했죠. 제게 상담을 받았던 분 중에 ‘덕분에 자살을 하지 않게 됐다’는 말을 하신 분도 계셨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아프고 힘든 분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의미있고 가치있기에 그만두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임 작가에게 빛에 대해 묻자, 그는 “사람이 빛”이라고 말한다.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기에 그들은 임 작가에게 빛이 됐다. 몇 달 뒤에 다시 캄보디아로 떠난다는 임 작가. 그는 가장 허름한 옷을 챙겨 입고 가장 낮은 자세로 빛인 사람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하며 누른 카메라 셔터는 가장 아름답고 밝은 빛을 담아낼 것이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