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림기획-빛을 기다립니다] ② 탈북 이주민 청소년공동생활가정 - 수원 나르샤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9-12-03 수정일 2019-12-03 발행일 2019-12-08 제 317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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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민족… 평화가 오길 기도할 뿐입니다
‘날아오르다’의 순우리말 ‘나르샤’
3명 교사가 가정같은 돌봄 환경 제공
상담과 생활습관 정립·학습 지원도

북한 양강도 혜산이 고향인 윤시우(16·가명)양은 13살 되던 2017년 2월 엄마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났다. 플라스틱 슬리퍼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밤길을 걷고, 시린 발로 얼어붙은 강을 건넜다. 이후 중국 심양과 중국 국경의 태국 수용소에서 머물다 그해 5월 한국에 왔다. 8월에 하나원을 퇴소해서는 바로 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이헌우 신부, 이하 교구 민화위) 소속 수원 나르샤(시설장 강영미, 이하 나르샤) 식구가 됐다.

경제적 안정과 정착이 시급한 엄마는 식당에 취업을 했다. 나르샤는 탈북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공동생활 가정이다. 자녀 양육과 교육 문제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북한이탈주민 자립 지원을 위해 지난 2009년 문을 열었다. ‘나르샤’는 ‘날아오르다’라는 순 우리말이다.

‘데레사’라는 이름으로 세례도 받은 시우양은 한국 학제에 적응해야 하기에 나이보다 두 학년을 낮춰 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했다. 학교에서 ‘북한에서 온 아이’, ‘북한 엄마 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친구들이 친하게 지내다가도 돌변하는 것을 경험한 시우양은 북한 말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언어 습관부터 고쳤다. 이제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매주 인근 본당 청소년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그는 기도 때마다 보고 싶은 북한 친척들과 친구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북한에 있을 때와 비슷한 놀이를 하는 경우에도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 12월부터 매일 밤 나르샤 선생님들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을 바치면서 시우양 마음은 고향에 더 자주 다다른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는 성탄을 기다리며 드리는 소원은 저절로 ‘통일’로 모아진다.

탈북한 엄마가 중국에서 낳은 10살의 이효진(가명)양은 3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고 지난해 12월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 3학년으로 학업을 시작했으나 한국말을 잘 못해 ‘왕따’를 당했다. 엄마는 일용직에 근무하느라 효진양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방치되다시피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 사정이 알려져 관련 기관 소개로 나르샤에 왔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가정 친화적 돌봄 환경 속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12월 1일 대림 제1주일을 지내며 수원 나르샤 교사들과 거주 청소년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을 봉헌하고 있다.

현재 나르샤에는 북한 출신 2명과 중국에서 출생한 4명의 여자 청소년들이 지낸다. 제일 큰 언니 김은희(가명)양은 최근 수시 전형에 합격해 곧 대학에 진학한다. 나르샤에는 만 18세까지만 머물 수 있어 김양은 곧 이곳을 떠나 엄마와 지내게 된다.

남한에서 아이들이 살며 가장 걱정하는 것은 ‘북한에서 왔다는 것’, ‘시설에 있다는 것’이 알려져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뒷모습까지 친구들이 알아볼까봐 사진 찍기를 두려워했다. 그간 이들이 학교나 사회 현장에서 북한이탈주민으로 지내며 감내했어야 할 그늘이 배어나왔다.

언젠가 아이들의 한 엄마가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에서 최하층민 대접을 받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학교를 나와 사회 진출을 해야 한다”고 들려준 말은 그들이 겪는 아픔을 대변한다.

대외적으로 ‘이모’로 불리는 3명의 교사들은 집단 상담과 언어치료 등을 통해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 애쓴다.

인가시설이면서 교구가 운영하는 탈북 어린이 청소년 공동 생활가정으로서는 나르샤가 드문 사례다. 교구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업 일환으로 나르샤를 설립했다. 2007년 안산 나르샤가 먼저 설립됐다. 수원 나르샤는 지난 8월, 10주년 생일을 맞았다.

주된 역할은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서비스 제공과 함께 기초적인 생활 습관을 양성하는 역할 지원, 학습 지원, 남한사회 적응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 지원 등이다.

이외 역사문화캠프, DMZ 캠프 등 특별 체험 활동이 있고 종교 활동으로 매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 행사도 갖는다. 현재 3명이 세례를 받았고, 나머지 3명도 내년에 영세할 예정이다. 가톨릭교회 이념으로 운영되는 곳인 만큼 기본적인 신앙교육과 기도 생활 등으로 자연스레 하느님께 젖어들도록 한 결과다. 무엇보다 나르샤는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키워주는데 중점을 둔다.

시설장 강영미(소화데레사)씨는 “정서적 심리적인 안정 속에서 건강한 정신과 마음, 건강한 몸으로 대한민국의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했다.

입소 청소년 부모들과도 부모교육 등 가족통합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남한 사회 일원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구 민화위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주고 있으나, 국가보조금과 남북하나재단 지원금만으로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개별 수준에 맞춘 양질의 프로그램 시행이 어려운 점은 아쉬움이다.

강씨는 “사랑이 많이 고픈 아이들이라 주는 사랑도 모자란 듯 보인다”며 “우리 가톨릭 신자들만이라도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품어 안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때에 새터민 어린이와 청소년이야 말로 통일이자 예수님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후원 문의 010-4110-8473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