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화로 만난 하느님] (24) 세상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rn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입력일 2019-11-26 수정일 2019-11-27 발행일 2019-12-01 제 317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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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이 낙원 갈 수 있도록 영원한 안식을 양팔 벌려 기도
기도하는 이 그린 ‘오란테’ 형식
2세기부터 지하묘지 나타나
영혼의 부활·구원 염원했던 그리스도인 장례미술로 보편화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박물관 내 회화관에 소장된 그림 ‘최후의 심판’은 보기 드문 형태의 템페라 작품이다. 로마의 캄포 마르치오에 있는 산타 마리아 여자 베네딕도 수도원 부속인 산 조르조 나지안제노의 오라토리오 내부에 있는 제대에 배치됐던 것이다.

그림의 틀은 둥근 형태로 아랫단은 직사각형으로 이뤄져 있다. 그 틀은 빨간 띠와 백합 잎 모양의 장식으로 둘러싸여 있다. 장면은 총 5단으로 나눠져 있다. 맨 위에 두 명의 세라핌과 천사들과 함께 있는 그리스도를 시작으로 두 천사와 열두 사도들과 함께 제대 앞에 있는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세 번째 단에는 좀 더 복잡한 구성으로 세 명의 인물(성 바오로, 성 스테파노, 성모 마리아)이 중심이 되고 있다. 네 번째 단에는 관에 있는 죽은 자들에게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들과 죽은 자들의 몸이 들어 올려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아랫단에는 봉헌자들이 성모께 간구하는 모습과 지옥의 장면이 묘사돼 있다.

니콜로와 조반니의 ‘최후의 심판’, 12세기, 패널에 템페라, 288x243㎝,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박물관

■ 대사제 그리스도의 손

화면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면은 가장 위에 자리한 그리스도 형상이다. 그리스도는 여섯 날개를 가진 두 세라핌과 두 천사의 보위를 받으며, ‘가장 높은 자리’에서 엄숙하고 근엄하게 이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

정중앙 그리스도는 우주의 통치자이며, 황제처럼 위엄을 갖추고 옥좌로 상징된 구에 영광스럽게 앉아 있다. 그리스도는 왼손에 구원의 상징인 긴 십자가를 들고 있고 오른손에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는 구절이 새겨진 구를 들고 있다. ‘세상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당당하고 위엄 있는 임금의 모습이다.

두 번째 단에는 사제 복장을 한 그리스도가 천사와 사도들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오란테(Orante) 형식으로 제대 뒤에 서 있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린 그리스도는 미사를 드리는 사제와 같은 모습이다. 대사제로서 당신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성체성사 안에서 함께 나누려는 것이다.

제대 위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도구가 놓여 있다.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찌른 창, 예수가 숨을 거두기 전 갈대에 신 포도주를 적셔 마시게 한 해면, 손과 발에 박은 못들, 가시관, 성경 그리고 금 도금된 십자가 등이다. 이는 고통과 죽음의 상징 도구이자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의 도구로, 십자가 위에서 목숨까지 내어줌으로써 이제는 우리와 함께 당신이 소유한 무엇이든 나누려는 것을 드러낸다.

비록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된 사제의 모습으로 제대 앞에 서 있지만, 그 위에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왼쪽 대천사가 든 두루마리에는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라고 적혀 있고, 오른쪽 대천사가 든 두루마리에는 “저주 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태 25,41)고 적혀 있다.

■ 간구하는 손

세 번째 단에는 무고한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에는 부제 복장을 한 성 스테파노가 순교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고, 그의 앞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각각의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서 있다.

성 스테파노와 마주한 성모 마리아는 양손과 고개를 하늘로 향해 그리스도께 간구하고 있다. 그 뒤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회개한 도둑이 십자가를 들고 있다. 뒤로는 선택된 많은 평신도와 성직자가 성 바오로와 함께 있다. 오른쪽에는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감옥에 있는 자를 찾아가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6)

네 번째 단에는 죽은 자들의 부활한 모습을 땅(황소 위에 앉은 유형)과 바다(바닷속 용 위에 앉은 유형)의 의인화로 나타내고 있다. 왼쪽에는 땅과 바다의 동물이 사람의 몸을 토해내고 있고, 오른쪽에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를 듣고 관에서 나오는 죽은 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부활한 이들의 몸은 땅과 바다 정령의 손에 하늘로 올려지고 있다. 나체의 부활한 두 사람도 하늘을 향해 양팔을 올려 간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랫단 왼쪽에는 도시 밖에서 수도원장인 코스탄자와 수녀인 베네딕타라는 봉헌자들이 성모께 간구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벌 받는 지옥 장면이 묘사돼 있다. 왼쪽에는 순교자의 시신을 수습하며 피를 닦던 자매인 성녀 프라세데와 푸덴지아나와 그들 뒤로 줄을 이은 선택된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가 전형적인 오란테 형식의 모습으로 양팔을 올리고 있다.

‘오란테’, 3세기, 이탈리아 로마 프리실라 카타콤바

■ 은총을 받으려는 손

기원하는 자라는 의미의 오란테 도상은 2세기 후부터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지하묘지인 카타콤바에서 많이 나타난 형상이다. 인물은 기도하거나 탄원하듯 양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린 채, 손바닥은 밖으로 드러내고 머리와 눈은 약간 위쪽을 향해 있다. 이 자세는 죽은 영혼의 부활이나 구원을 염원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오란테 형식의 이미지는 이미 헬레니즘 미술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낙원으로 갈 수 있도록 장례 이미지로 보편화됐으며, 로마 시대에는 주로 석관이나 동전에 부조 형식으로 새겨졌다. 특히 황제의 부모나 가족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려졌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란테는 영원한 안식에 대한 기원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이용된 것이다.

양팔을 올린 것은 신비의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하고, 펼쳐진 신성한 공간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신비롭게 받는 행동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란테 유형의 성모 마리아는 새로운 영원한 계약을 의미한다.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rn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