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가난이 행복을 막을 수 있을까 / 손효진

손효진rn(비아·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병리과)
입력일 2019-11-26 수정일 2019-11-26 발행일 2019-12-01 제 317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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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난지도로 알려진 ‘파야타스’. 필리핀에서는 ‘쓰레기 동산’이라고 불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쓰레기더미 정도일까’, ‘쓰레기가 동산을 이룬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등의 생각이 들었을 뿐 어떤 마을 모습일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막상 그곳에 도착해서 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는데 코끝으로 전해지는 냄새로 선뜻 차 문을 열기 힘들었습니다.

‘쓰레기 동산의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에 ‘이곳 쓰레기를 없애버리면 되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지 않다는 것과 정부에서 더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명령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오히려 이곳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쓰레기를 받기 위해 돈 있는 사람들은 뒷돈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기본적인 위생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만 빼면 그곳도 그냥 사람들 사는 동네였던 것이죠. 그렇다 해도 그곳은 악취가 나고 곳곳에 병이 쉽게 걸릴 수 있는 환경으로 아픈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방문가정에 도착했을 때에도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진흙 길이 마음을 너무 무겁게 했습니다. 물이 고여 있는 젖은 바닥을 여름 샌들로, 듬성듬성 구더기를 밟고 다녀야 했던 기억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반갑고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를 반겨주는가 하면 몇몇 아이들은 뒤로 숨기도 했지만 돌아갈 때쯤 모두가 밝은 미소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본 천진난만하고 맑은 아이들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가난 때문에 집안 형편을 걱정하고 있는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고 친절했습니다. 한 아이는 팔이 코끼리처럼 부풀어 올라 곧 수술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들의 작은 방에는 아이들 다섯 명과 부모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그 주위 모두가 쓰레기 사이로 집을 만들며 그렇게 살고 있었지만,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처럼 같이 얘기하고 웃고 반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난이 저들의 행복을 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눌 것 하나 없는 그곳에서 그들은 나누었습니다. 온정을 나누고 미소를 나누고 가난한 마음조차 나누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가진 것도 없지만 그들 앞에서 부와 명예를 논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그들은 제게 주님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나라면 해낼 수 없는 천사의 미소를 가진 주님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손효진rn(비아·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병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