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이야기

[우리 이웃 이야기] 35년간 성 라자로 마을 후원한 이동희씨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19-11-26 수정일 2019-11-26 발행일 2019-12-01 제 3172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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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가르침 ‘이웃 사랑’ 실천한 시간
후원회원으로 활동하며 교우들로부터 후원금 모금
“세상 떠나기 전까지 할 일”

성 라자로 마을을 35년간 후원해온 이동희씨는 “지난 35년을 돌아보면 참 뿌듯하다”고 말한다.

17살에 한센병을 앓아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 했던 한하운 시인. 그가 발표한 「황톳길」, 「보리피리」 등의 작품에는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이동희(마리데레사·70·제1대리구 상현동본당)씨는 중학교 시절 한하운 시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황톳길’을 접했다. 한센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을 1960년대였지만,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동희씨에게 한센인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랑과 관심을 전해야 할 이웃이었다. 그렇게 이씨와 한센인의 인연은 시작됐다.

“영화 ‘황톳길’을 본 감동이 어른이 될 때까지 잊히지 않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던 중에 문득 소록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지만 저는 전혀 겁이 나지 않았어요. 소록도에서 만난 한센인들은 손과 코가 없이 얼굴은 뭉그러진 모습이었지만 웃으며 저희를 반겨주셨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록도가 마치 천국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센인과 인연을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의 소록도가 이씨에겐 천국처럼 느껴졌고, 그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궈가는 한센인들의 모습은 이씨의 삶을 바꿨다. 그 뒤로 35년간 이씨는 한센병 환자의 치료와 사회복귀를 돕는 성 라자로 마을에 후원금을 보냈다. 35년은 사랑을 전달한 시간이자, 사랑을 받은 귀한 시간이었다.

“성 라자로 마을 원장이셨던 이경재 신부님께서 후원회를 꾸려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기다렸다는 듯이 승낙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후원회원으로 구성된 겨자씨 2팀의 팀장을 맡아 교우들 집을 돌며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돈을 내라는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한센인들을 돕는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모르고 후원금을 모은 게 벌써 35년이 됐네요.”

지난달 열린 라자로의 날 행사에서 이씨는 35년간 성 라자로 마을을 후원한 공로로 감사장을 받았다. 한 달에 몇 만원이 모일 때도 있지만, 이씨는 35년간 잊지 않고 매달 마지막 날이면 성 라자로 마을로 돈을 보냈다. 한센인을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으로 채워진 이씨의 35년은 이웃사랑이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시간이었다. 이씨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나도 한 것 뿐”이라고 말한다.

이어 “성 라자로 마을 가족들이 후원회원들에게 해주시는 기도 덕분에 제가 여러 고비를 넘기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성 라자로 마을을 후원하며 사랑 드리러 왔다가 사랑을 받고 간다”고 전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룬다. 이웃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웃에 대한 작은 사랑과 관심은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씨앗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씨는 “큰일은 아니지만 지난 35년을 돌아보면 참 뿌듯하다”며 “성 라자로 마을 후원은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신자분들이 성 라자로 마을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