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천사들의 합창 / 손효진

손효진rn(비아ㆍ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병리과)
입력일 2019-11-19 수정일 2019-11-19 발행일 2019-11-24 제 317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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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미얀마로 해외 봉사를 갔을 때 일입니다. 봉사단이 머물렀던 도로꼬 지역은 보통 미얀마 날씨와는 다르게 겨울옷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추운 산간 지역이었으며, 전기는 물론 물도 구하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도로꼬 지역에서 지내는 나흘 동안 사용한 물이라곤 양치하는 물, 또르르 흐르는 물에 세수, 화장실 한 쪽에 물 내리는 용도로 둔 물로 머리를 감은 게 전부였습니다. 먹는 물은 나눠준 500밀리 페트병 3~4개 정도로 해결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양동이에 따뜻한 물을 끓여 와서 몸을 씻으라고 가져다주었지만, 그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쓸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에 계곡이 있어 산중이라도 그 물로 살 수 있지만, 그곳은 지형이 달라서 그런지 물을 전혀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마을을 산책하는데 드문드문 아주 커다란 시멘트 원기둥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앞이마에 똬리를 받쳐 큰물 양동이를뒤로 하고 물을 길어 나르는 할머니와 처녀들을 보았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1년 내 그 시멘트 기둥에 빗물을 모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몇 개월째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는 시기여서 그 물을 쓸 수 있을까도 걱정됐지만, 그 마을 사람들만의 지혜가 있는 건지마을 사람들은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표정은 백만장자의 안락한 표정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지혜와 겸손과 온유, 평화로움과 순수함이 모두 공존해 있었습니다.우리는 모두 그곳에 있으면서 가뭄의 불편함이라든지 먹을 것 없는 배고픔이라든지 문명이 만들어낸 편한 시설들이 전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영적으로 충족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존에 필요한 물건과 시설들이 대부분 부족했음에도 4일을 무사히 지내온 것은 주님의 보살핌과 마을 사람들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 나를 가장 감동하게 했던 것은 새벽을 깨우는 맑은 영혼들의아침기도와 미사였습니다. 도로꼬의 새벽은 동방박사의 별이 뜨는 하늘처럼 감청색 하늘에반짝이는 별 하나가 유독 눈에 띄는 신비롭고 아주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공간에 울려 퍼지는 마을 아이들의 매일 새벽기도. 천사들의 합창 같은아침기도가 30분 동안 이어지고 뒤이어 미사가 이어집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였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손효진rn(비아ㆍ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병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