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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종식 기획]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 (10) 성·생명·사랑에 대한 회피 문화를 책임 문화로 바꿀 순 없을까?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19-11-12 수정일 2019-11-13 발행일 2019-11-17 제 317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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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문화’로 인식 바꾸려면… 교육이 답이다
◆성·사랑에 대한 한국의 ‘회피 문화’
자유 추구하지만 책임은 안 지려해… ‘남녀 공동 책임 의식’ 확립 필요
◆‘책임의 성교육’ 중요성 증대
타인의 몸에 대한 존중 기본으로 성·임신·출산에 대한 책임 알려야
◆성교육, 가정 역할 중요
피임 교육 넘어 인간 존중이 중요… 가정교육 어려울 땐 교회가 이끌어야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 (6)~(9)편에서는 임부가 직·간접적 낙태 강요를 받고 있고 이로 인해 낙태가 이뤄지는 현실에서, 임부가 낙태 아닌 출산을 하도록 하려면 어떤 법적·제도적 방안이 필요한 지 알아봤다.

직접적 낙태 강요에는 임신 유지·출산·양육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양육비 이행 강제 조치’와 ‘낙태 강요죄’가, 간접적 낙태 강요에는 임신 유지·출산·양육을 돕는 상담과 수준 높은 지원, 입양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직·간접적 낙태 강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 개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생명·사랑에 대한 ‘회피 문화’가 ‘책임 문화’로 변화해야 하고, 그럴 때 궁극적으로 직·간접적으로 낙태를 강요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5월 15일 서울 중곡동 가톨릭신문 본사에서 이뤄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그 이후’ 주제 ‘올바른 렌즈로 세상보기’ 좌담 결론이다.(본지 5월 26일자, 제3146호 4면 참고)

이번 편에서는 성·생명·사랑에 대한 회피 문화를 책임 문화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알아본다.

■ 성·생명·사랑에 대한 ‘책임 문화’와 ‘회피 문화’

“문화의 영향이죠. 이스라엘은 아이가 많은 여성이 존중받는 사회이고, 임신한 여성과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대우합니다.”

이스라엘교육연구원 이영희 대표의 책 「유대인 임신·출산의 비밀」에는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이스라엘에서 가족 치료 상담소를 운영하는 레나씨의 말로, 레나씨는 이스라엘의 높은 출산율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유다인들이 다출산하는 비결은 ‘문화의 영향’이라는 의미다. 실제 이스라엘 합계출산율은 2016년 기준 3.11명으로, OECD 국가 합계출산율 중 가장 높다.

임신·출산을 포함해 성·생명·사랑에 대한 문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과 같은 ‘책임 문화’, 다른 하나는 한국과 같은 ‘회피 문화’다. 이스라엘에서는 성·생명·사랑에 대한 책임 문화를 갖고 있다. 모든 국민이 똑같다고는 할 순 없지만, 대체로 ‘어떤 일이나 행위에 있어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진다.’ 임신에 대해서도 어떤 상황에서든 임신했으면 기본적으로 생명을 존중해 낳는 것이 유다문화다.

한국은 조금 다르다. 성·생명·사랑에 대해 ‘회피 문화’를 지니고 있다. ‘어떤 일이나 행위에 있어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이러한 회피 문화의 현주소는 2018년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이 조사에서 낙태 경험 여성 756명 중 31.2%는 ‘자녀계획’(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 조절 등)을 이유로 낙태했고, 전체 응답자 1만 명은 낙태와 관련해 가장 필요한 국가의 역할로 ‘남녀 공동 책임 의식 강화’를 들었다. 회피 문화에 따른 인식 개선을 한국 사회에서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인식 개선 위한 핵심은 ‘교육’

그렇다면 이러한 회피 문화에서 책임 문화로 인식 개선이 이뤄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핵심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6월 19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생명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열린 가톨릭포럼에서 패널로 나선 한국청소년상담학회 국가정책개발위원회 배정순(에스테르·경북대학교 외래교수) 위원장도 “낙태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교육에 있다”고 역설했다. 배 위원장은 “성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누리는 데에는 책임과 존중이 필요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떤 가치관과 신념을 심어줄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다”면서 “성과 임신·출산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책임의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생명·사랑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은 그동안 교회에서도 수시로 강조해왔다. 올해 2월 2일 교황청 가톨릭교육성도 문헌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를 발표하면서 “지금 우리는 교육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는 사랑과 성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특히 그러하다”(1항 참조)고 설명했다. 특히 인간의 성을 일상적인 것으로 끌어내리는 문화 안에서 인간의 성은 단지 육체와 이기적 쾌락에만 연관돼 해석되고 있기에(38항), 가정과 학교·사회는 타인의 몸에 대한 존중을 목표로 하는 정서 교육과 성교육 프로그램을 마련(46항)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전인적으로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에 있어 특히 중요한 것이 ‘가정의 역할’이다. 성·생명·사랑에 대한 “교육은… 가정이 맡아야 할 임무”(성교육에 관한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48항)이고,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 부부들은 하느님 계획에 따라 성생활을 하고 자연적 임신 제한 방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62항). 가정에서의 성교육이 어려울 때는 교회 공동체가 그 임무를 맡아야 한다(53항).

이와 더불어 강조되는 사항이 ‘전인적 교육의 중요성’이다. 단순한 피임 교육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과 책임 의식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 「교육의 중대성」에서도 “청소년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긍정적이고 신중한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면서 “청소년들이 육체적·도덕적·지성적 자질을 조화롭게 발전시키고 책임 의식을 갖고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1항)고 밝힌다. 사랑과 성에 대한 교육은 인격 전체를 고려해야 하고, 이타적인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성에 대한 성숙성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제언과 같다.(「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35·36항)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유성현 신부는 “많은 사람이 인간 생명에 대한 의식과 교육에 목말라하고 있다”면서 “인간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느 순간부터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시작되는지, 무엇 때문에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는지에 관한 것들은 태아의 인간학적 인식과 성찰의 기초적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낙태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반드시 철학적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생명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 주제 가톨릭포럼).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