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47) 손자와 오른 산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9-11-12 수정일 2019-11-12 발행일 2019-11-17 제 3170호 1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누리솔이 걷기 시작하면서 언제쯤이면 같이 산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힘에 부치는 산을 오르는 것은 오히려 산을 멀리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주변 아이들을 보면서 느꼈기에 조심스러웠다.

부모 욕심에 무리해서 대청봉을 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대견하기보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마음으로는 진즉에 설악산 대청봉도 함께 오르고 싶었으나 자연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일이 먼저라고 여겼기에 동네 산부터 함께 가곤 했다. 서울에 사는 누리솔은 속초 할아버지 집에 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일주일쯤 지내다 집에 갈 때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산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아이들은 몸으로 아는 것이다.

아직 대청봉엔 오르지 못했지만 울산바위가 마주 보이는 신선대에는 몇 차례 올라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라고 쓰인 둥근판을 함께 들기도 했다.

누리솔도 스스로 대견하게 여겼던 것일까, 올봄에 1인 시위를 하러 신선대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가 뒤돌아서더니 “할아버지 죽으면 내가 대신 할게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냐, 할아버지가 막아 줄게!”라고 대답하면서 이런 세상을 물려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는 내가 왠지 슬펐다.

다행히 설악산 케이블카 계획은 부동의로 끝이 났고 같이 울산바위를 오르기로 했다.

조금은 들떠 있는 듯했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올랐다. 울긋불긋 단풍이 가득 내려앉은 산은 아름다웠고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산길은 즐거웠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 누리솔은 대답이 궁해질 만큼 쉬지 않고 질문을 했다. 차츰 높아지는 산길에서 바라다보는 설악산의 풍경은 누리솔에게 또 다른 세상으로 다가섰으리라. 짙푸른 하늘과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울산바위 계단길을 올랐다. “다 왔다!”

누리솔의 외침에는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에 대한 감동이 그대로 담겨 있었고 엄청나게 큰 바위 덩어리와 미시령 고개를 넘어가는 자동차가 손톱만하다고 신기한 듯 말했다. 표정에서 읽히는, 스스로 해냈다는 자랑스러운 모습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풍경을 바라보며 누리솔이 자연 속에 깊이 젖어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누리솔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줄 것인지를 생각하며 아이들이 누려야 할 경이로운 자연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울산바위를 내려오며 못내 아쉬워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풍경이 애잔하다. 누리솔이 이다음 아름다운 청년이 됐을 때도 설악산에 올라 감동에 빠졌으면 좋겠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