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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19-11-12 수정일 2019-11-12 발행일 2019-11-17 제 3170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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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환경에서 살 권리, ‘연대’로 해결해야
주거는 인간 존엄성 유지 조건
쪽방·고시원 등 집 아닌 주거지
생존을 위협하는 장소 되기도
교회가 주거권 향상 노력하지만 정부와 사회 함께 개선할 과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를 통해 수 세기가 흘러도 빈부격차 상황은 변함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젊은이와 어린이를 예속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예화가 있다”고 밝혔다. 교황이 말하는 새로운 노예화에 예속된 사람들은 ‘생계 수단을 찾기 위해 고향 땅을 떠날 수밖에 없는 가정들, 고아들, 일자리 없이 방황하는 젊은이들, 거리를 떠도는 수많은 노숙인들’ 등이다. 이들의 공통된 문제는 뿌리내릴 곳이 없다는 것이다. 즉, 가난의 문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주거형태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연구원은 “주거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인 물리적 공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쪽방과 고시원, 여관 등 비적정 주거지역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참사들을 보면, 가난한 이들에게 주거공간은 오히려 생존의 위협을 가하는 장소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지난해 5월 공식 방한한 레일라니 파르하(Leilani Farha)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은 “한국은 세계 경제 강대국으로 부상했지만 고시원과 쪽방 등 비적정 주거 지역 문제와 세입자 주거권 문제 등에 있어서는 심각한 요소들이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주거는 국제인권의 공식적인 기준에 따라 부동산 경제정책의 일환이나 복지를 넘어 하나의 권리이고, 권리로서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35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주거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가난한 이들도 안정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

교회 역시 주요 문헌들에서 주거권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하며,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에 연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삶의 자리는 사는 것(buying)이 아니라 사는 곳(living)입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나승구 신부, 이하 빈민사목위) 홍보책자 맨 첫 장에 나오는 말이다. 빈민사목위는 이 말에 따라 사회 곳곳의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투신하고 있다. 특히 취약한 주거환경에 처한 아동과 청년주거 문제 그리고 세입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앞장서고 있다.

복음의 정신에 따라 투신하고는 있지만, 교회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나승구 신부는 “이 일은 교회만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정부와 사회가 공동선을 향한 연대를 이룰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호주 멜버른대교구(교구장 피터 앤드류 코멘솔리 대주교) 사례는 교회와 정부가 연대한 모범적인 예다. 멜버른대교구는 교회가 소유한 땅에 정부로부터 사회주택기금을 지원 받아 2017년 사회주택을 설립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부담 가능한 적절한 금액으로 제공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는 설립 30주년을 맞은 빈민사목위에 기고한 글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투신은 교회와 사회 전체의 핵심적 관심사이고 사목활동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