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신앙과 애덕 실천으로 신분의 벽 넘고 교회 주추 놓다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신앙 지키며 진리 통한 사회 변혁에 큰 역할 한국교회 설립 중요한 토대 이뤄 여성 신앙 공동체 자발적으로 조직 사랑 전하며 선교에 적극 매진
한국교회는 선교사나 성직자 없이 평신도들이 교회를 먼저 창설했다. 이 땅의 평신도들은 조선교구 설정 이전에 이미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며 순교의 칼을 받았으며 혹독한 박해를 무릅쓰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 신앙의 뿌리를 내렸다. 그 안에서 특별히 당시 여성 평신도들은 희생 자체였던 조선 여성들의 삶 속에서 꿋꿋한 신앙생활과 애덕 실천으로 교회 유지와 발전에 기여했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박해 시대 여성 평신도들의 활동과 영성을 살펴본다.
■ 새로운 가치를 따라 조선 유교 사회에 유입된 천주교 신앙은 당시 시대적 상황 안에서 남성보다 여성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김정숙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영남대)는 「조선 후기 천주교 여성 신도의 사회적 특성」에서 “여성에게 있어 천주교 신앙은 전통적 사회 기반을 흔들고, 근대적 정신과 생활양식의 기초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됐다”고 밝힌다. 남성 지식 계층에 의해 수용된 천주교 신앙은 여성들에게 급격히 전파돼 갔다. 박해시대 전체 여성 신자들의 수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하느님의 종 황사영(알렉시오)의 증언 등을 참고할 때 교회사학자들은 1801년 당시 여성 신자 비율이 2/3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경신년 4월에 명도회에 가입한 후로 여러 교우들이 신공을 부지런히 힘썼고, 회원 아닌 사람들도 역시 쏠려서 자진해 움직여 모두 남을 감화시키기에 힘썼습니다. -중략- 부녀자가 3분의 2요, 무식한 천민이 3분의 1이었는데, 사대부 집 남자는 세상의 화가 두려워서 믿고 좇는 사람이 극히 적었습니다.”(황사영 「백서」 중) 박해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여성 신자가 대체로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황은 한동안 지속했을 것으로 본다. 순교자 관련 기록들을 참조해서 신자 성비를 추정하면 1850년대 이후 조선 교회에는 대략 7000여 명에서 1만2000명에 이르는 여성 신자들이 있었다고 파악한다. 천주교를 만난 여성들은 유교적 관념이 엄격하고 철저한 신분 사회에서 신앙에 대한 열정을 추구하고 지키며 교회 설립의 중요한 토대를 이뤘다. 또 사회적 기득권과 전통적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로 시대를 탈바꿈하는 기초가 됐다. 김 교수는 “조선 시대 여성 신자들은 한국 여성사에서 독립된 지위와 역할을 확보해 나가는 근대 지향적 시점을 마련했다”고 밝힌다. 한국교회 첫 순교자 복자 윤지충(바오로)의 모친 안동 권씨는 유교식 조상 제사 거부를 유언으로 남기면서 향후 백 년의 박해를 몰아치게 한 빌미를 제공했으나 그리스도교 진리를 통한 사회 변혁에 획을 긋는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여성들은 한국 천주교회 시작 때부터 신앙의 싹을 트는 결정적인 계기에 자리했다. 김성태 신부(대전교구 솔뫼성지 전담·내포교회사연구소장)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폐제분주를 실천했지만 이미 어머니 안동 권씨의 강한 유지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그는 신앙을 전수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리학적 전통에 정면으로 맞서며 적극적으로 사회 변혁을 시도한 여성”이라고 밝혔다.■ 적극적인 변혁의 주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회장이었던 복자 강완숙(골룸바)은 순교자로서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여성사에도 시금석이 된 인물로 꼽힌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활동하기 힘들었던 당대에 한국 사회 최초로 여성 신앙 공동체를 만들고 교회가 뿌리 내리는 데 필요한 봉사와 선교에 매진했다. 특히 여성 신앙 공동체는 여러 방법으로 공동체 유지를 위해 경제 활동에 나섰다. 이는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개척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사회의 문화와 관습 속에서 격식을 깨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강완숙은 또 주문모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도맡아 처리했고 교리교사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런 활약으로 1794년 주문모 신부가 4000명에 불과하던 신자 수는 5년 만에 1만여 명을 헤아리게 된다. 그중 여성 신자 수가 절대다수였다. 학자들은 강완숙의 삶과 영성은 21세기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과 지도자상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복자 윤점혜(아가타) 경우는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는 동정 생활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드러냈으며, 또 동정녀 공동체 회장을 맡아 수많은 동정녀를 지도하며 가르쳤다. 수리산에서 체포된 최양업 신부의 모친 복자 이성례(마리아)의 삶도 가톨릭 신앙을 지키고 모범을 보인 대표적인 여성 신자 사례다. 사제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식을 내놓았고, 회장을 맡았던 성 최경환의 부인으로 회장 일을 도우며 함께 자선을 베풀었다.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