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연작 성가곡 발표음악회 충만한 사랑 글과 곡, 두 주인공을 만나다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19-11-05 수정일 2019-11-06 발행일 2019-11-10 제 3169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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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압구정동성당에서 열리는 본사 주최 연작 성가곡 발표음악회 ‘충만한 사랑’의 두 주인공 김남조 시인과 이대성 작곡가를 만났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두 거장이지만 이번 음악회는 주님을 찬미하는 자리인 만큼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한없이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깊어가는 늦가을 밤, 아름다운 시와 음악이 펼쳐지는 풍성한 자리에 많은 이들이 와서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 20편의 시가 성가곡 가사로 - 김남조 시인

“세월 흐를수록 삶과 작품은 더 간결해져

음악회가 주님 찬미하는 축제로 봉헌되길”

“저는 근년에 나이 들어 숨어 있는 처지였는데 신작 성가곡 발표회라는 밝은 자리에 동참하게 돼 기쁘고 과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음악회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애환을 주님께 간절하게 고하면서 함께 주님을 찬미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문단의 큰 어른으로 70년 넘게 작품을 발표해 온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시인. 자신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음악회 ‘충만한 사랑’을 준비하면서 김 시인은 지금껏 쓴 1100편의 시 중에서 25편을 추렸고, 이 가운데 20편의 시가 이대성 작곡가를 통해 성가곡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

김남조 시인은 연작 성가곡 발표음악회 ‘충만한 사랑’에 대해 “내가 아닌,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함께 바치는 찬미”라고 강조한다.

이 중에는 ‘순교’, ‘가시관과 보혈’, ‘예수의 얼굴’과 같은 대표적인 신앙시와 연작시 ‘막달라 마리아’, ‘선물’, ‘사랑초서’ 중 몇 편, 그리고 교과서에 실린 ‘겨울바다’ 등이 포함돼 있다.

김 시인은 자신의 시가 성음악계의 권위자인 이대성 작곡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데에 대해 영광스럽다고 전하며, 이번 음악회가 모두의 경건한 축제로 주님께 봉헌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한 평생 신앙시를 써 온 시인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신앙의 초년병’이라고 말하며 낮춘다.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을 지내고 오늘에 이른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나의 삶과 작품이 더 간결하고 간절해지면서 비로소 은총의 거룩한 옷자락의 한 끝이 닿는 듯한 일깨움과 위안을 접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다시 말해 시는 언어의 표현이라기보다 삶의 깊은 길목에서 알게 되는 침묵과 감동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구십이 됐을 때 알게 되는 세계가 있다”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성가곡으로 만들어진 시들은 대부분 김 시인의 근작시들이다. 김 시인은 세월이 갈수록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 울며 위안과 축복을 주시는 주님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심경이 잘 나타난 작품이 ‘순교’다.

○ 순교

예수님께서

순교현장의 순교자들을 보시다가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를 모른다고 해라

고통을 못 참겠다고 해라

살고 싶다고 해라

나의 고통이 부족했다면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련다고 전해라

어릴 때부터 그저 예수님이 좋았다는 김 시인에게 있어 기도란 어떤 것일까.

“삶이 깊어짐에 따라 말로 아뢰는 기도에서 침묵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갈망으로 옮겨졌습니다. 나이가 드니 기도가 단순해지고 편안해집니다. 또 오늘의 허약한 나의 심신을 살피는 주님께서 자주 ‘쉬어라’라는 말씀을 건네시는 것 같습니다. 쉬면서 영혼을 가득 채우는 충족과 감회를 품게 되길 바랍니다.”

19번째 시집을 포함한 시전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는 김 시인은 “시전집이 마무리 되는 대로 시작(詩作)에서 손을 떼고 나머지 시간은 시를 읽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 시인은 “힘들게 여러 과정을 가다듬은 조욱종 신부, 탁월한 작곡가인 이대성 선생, 그리고 가톨릭신문사에 감사드린다”며 “함께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 깊이 주님의 축복을 빈다”고 말했다.

■ 시에 곡을 붙여 성가곡으로 - 이대성 작곡가

“시인과 작곡가의 연륜만큼 묵직한 작품

작곡하며 주님 사랑에 뜨거운 눈물도…”

“김남조 시인께서 보내주신 시의 첫 장을 보는 순간 하루 빨리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0이 넘은 시인과 70이 넘은 작곡가가 만나 탄생한 작품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작곡가 이대성(요한 세례자) 성 비오 교회음악연구소장은 일찍이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귀국한 후 미사곡, 전례곡,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을 주로 만들어 왔다.

이대성 작곡가는 “연작 성가곡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작곡하는 시간 동안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과거에도 시인들의 시로 곡을 만든 적이 있었지만, 성음악 작곡가인지라 세속의 곡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곡을 의뢰받아 완성하고도 찢어버린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김 시인의 시 스무 편을 곡으로 만드는 것은 전에 했던 작업과 전혀 달랐다.

“한 편, 한 편 차례차례 곡을 만든 것이 아니라 스무 편의 곡을 종합적으로 구상해서 작곡했습니다. 스무 곡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연결 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작곡을 쉽고 빠르게 해내 ‘작곡공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소장이지만 이번 작업은 그렇지 않았다.

창작과정 내내 자신의 좌우명인 ‘주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Fiat Voluntas Tua)대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다고.

“정제되고 연마된 단어 하나하나에서 느끼는 느낌을 그려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곡을 만들면서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에는 숨어 있는 무한한 내용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잡아내 정리한다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마지막까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겨울바다’를 작곡하고 나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젊은 시절 나의 모습과 쓸쓸함, 그것을 채워주신 하느님에 대해 돌아보게 됐습니다.”

조욱종 신부(부산교구)가 정리한 구약성경 아가서를 노래로 만든 ‘사랑의 고백과 아가서의 여인이여’ 또한 이 소장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었다.

문구 그대로만 보자면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듯하지만 실은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을 표현한 아가서의 흠결 없는 사랑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절하게 느낄 수 있도록 곡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에 독창곡으로만 구성된 1부와 달리, 독창과 중창, 합창이 어우러진 칸타타 형식으로 만들게 됐다. ‘여자’와 ‘남자’는 독창으로, 해설은 ‘합창’으로 그려냈다. 또한 남녀 주인공의 서로를 향한 열렬한 사랑을 선율의 흐름과 과감한 전조로 표현했다.

이 소장은 언젠가는 아가서를 오라토리오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자나깨나 작곡만 생각하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아’는 꿈에서 떠오른 멜로디로 만든 곡이다. 잠에서 완전히 깬 후 멜로디가 기억이 안 날까봐 비몽사몽간에 곡을 쓴 다음 다시 잠들었다고.

마지막으로 이 소장은 “시인과 작곡가의 만남을 주선하고 아가서를 정리한 조욱종 신부님 덕분에 이번 음악회가 성사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며 “새로 태어난 곡들이 앞으로 교회 안팎에서 널리 불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라토리오 ‘요한에 의한 수난복음’, ‘거룩한 탄생’, ‘카인’과 우리말 가사로 된 천사미사곡 등의 미사곡, 시편화답송과 수도자들을 위한 성무일도 전곡 등 전례곡을 작곡한 이대성 소장은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성음악대학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학·성음악학·성음악작곡 학위(MAGISTERIUM)를 취득했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