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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미디어 혁명 중… ‘사실’이 실종되고 있다 / 김지영

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9-10-29 수정일 2019-10-29 발행일 2019-11-03 제 316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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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18)
성경이 오늘날처럼 네모난 형태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은 5세기경이었다고 한다.(모든 책들이 그 전에는 두루마리 형태였다.)

하지만 이런 성경책은 평범한 일반인들이 소유하긴 어려웠다.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었다. 양가죽이나 소가죽에 일일이 손으로 글자와 그림을 새겨 넣고, 나무와 가죽으로 된 표지는 보석으로 장식을 했으니, 요즘 말로 쉽게 비유하자면 집 한두 채 값이 넘었으리라. 권력층과 부유층의 독점적 사치품이었다.

소유하기는커녕 남의 것을 빌려 보거나 슬쩍 한번 훔쳐보기조차 힘들었다. 예수님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지는 이미 오래전이지만 막상 대중이 그 말씀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같은 시간이 1000년이나 되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인쇄술을 혁신한 것은 1440년쯤. 그 뒤 점차 종이에 대량으로 인쇄한 성경은 권력·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소유하게 됐고, 언제라도 ‘말씀’을 옆에 두고 마음에 되새길 수 있었다. 성경과 신앙세계 뿐이랴, 인류사회는 지식·정보 전반에 걸쳐 혁명이 일어났다.

물론, 활자·인쇄 문화라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단연 앞섰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80년 앞서 1377년 간행된 「불조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로 공인(1972년)받았다. 하지만 그 수요가 왕실이나 정부 내에 국한돼 있었고 이 때문에 사회적 변혁을 불러오진 못했다. ‘혁명’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문자 발명 이후 진행된 미디어 발전 단계에서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 체제 발명은 미디어 기술·생산·유통이라는 공급 측면에서 엄청나게 파급력이 큰 혁명이었다. 그러다 현재, 디지털 플랫폼 중심의 미디어 혁명기에 이르러서는 구텐베르크 이후 유지돼왔던 기술과 생산, 유통의 공급망에서 진입장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미디어 생태계는 1인 미디어 중심으로 재편됐다. ‘소수의 전문직업인’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별다른 장비 없이 뉴스콘텐츠를 생산해 모든 이들에게 공급한다. 수많은 취재 및 제작 인력, 인쇄기 등 중후장대한 장비, 보급망 모두 필요 없다. 이들 1인 미디어 생산공급자들은 동시에 소비자, 즉 프로슈머(prosumer: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풍성한 소통의 축제, 미디어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그 혁명의 급류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혼돈의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초점을 저널리즘으로 압축해보자. 생태계 자체가 변하자 지금까지 예전 생태계의 성전에 모셔두고 숭배해오던 저널리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사실’이 실종되고 있다.

저널리즘을 유지하는 규율 중 그 중심은 사실(fact)이다. 사실은 의견과 구분해야 하며 기자의 의견으로 사실을 조작·왜곡해서는 안 된다. 또 그 같은 사실을 검증할 수 있도록 출처, 즉 취재원을 밝혀야 한다. 이는 보도의 정확성과 투명성을 위한 필수 장치로 객관보도를 위한 기본 조건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보도-신문·방송과 같은 전통매체부터 유튜브에 이르기까지-를 보면 사실인지 아닌지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물론, 개중에는 가짜뉴스(허위정보)가 다수 포함돼있다. 설사 사실을 조작한 가짜뉴스가 아니라 할지라도 진짜뉴스가 아닌 것들, 상한 음식처럼 왜곡한 뉴스나 검증하지 않는 뉴스가 너무 많다. 취재원도 밝히지 않고 자신의 취향이나 신념 등 의견을 개입시켜 ‘~알려졌다’ ‘~전해졌다’와 같은 피동형 문체를 쓰거나 과연 실존인물인지 알 수 없는 익명을 남용하는 경우가 주종이다.

예전에도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는 보도문장의 문제가 많았으나 지금은 완전히 하나의 보도 패턴으로 정착한 느낌을 준다. 그 배경에는 역시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의 뉴스 공급자나 소비자들은 객관적 사실이나 진실을 중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취향이요, 신념이다. ‘탈진실시대’ 미디어의 속성이다.

신문과 방송 같은 전통 미디어들도 이 같은 풍조를 따라 하고 있다.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본능 때문일 것이다. 과거 공공적 미디어에 대응하던 저널리즘 윤리와 법제도, 교육으로 사적 미디어 중심의 생태계에 더 이상 적응하기는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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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