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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하느님의 섭리

오안라(안나) 명예기자
입력일 2019-10-22 수정일 2019-10-23 발행일 2019-10-27 제 316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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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31년 전, 남편을 처음 만났다. 맞선을 보러 나간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앞 커피숍에서.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가는 내 시야에 테이블 위 펼쳐져 있는 신문이 들어왔다. 신문은 남편의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당시 신문은 나에게 ‘지식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키가 작다는 남편의 단점은 신문이라는 첫인상에 꼬리를 내렸고, 그렇게 신문은 우리에게 부부의 연을 맺어준 일등공신이 되었다.

24년 전, 남편의 직장관계로 전북 군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위한 취미활동으로 시아버님이 물려주신 수동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본당월보에 사진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후 월보편집을 맡으며 홍보분과활동을 하게 되었다.

16년 전, 전주교구 홍보국의 취재기자 모집에 응시했다. 교구주보인 ‘숲정이’에 각 본당·교구의 행사와 미담을 취재, 보도하는 일이었다. 글 쓰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취미를 묻는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신문읽기’라고 말하던 터라 ‘이제는 읽기에서 쓰기로 나가면 어떨까’라는 용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시작한 취재활동으로 첫 기사를 쓰던 날,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육하’(六何)라는 기사작성 원칙에 따라 정보를 압축하고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일의 어려움이 시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진땀을 흘렸던 한 문장에 또 다른 문장이 더해지며 기사가 쓰여졌다. 그동안 교구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양한 사목활동을 펼치는 사제와 신자들을 만났다. 시골선교본당에서 묵묵히 하느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제들을 만날 때는 마음이 숙연해지고 작은 교회 일에도 충실한 평신도들을 보면 하느님 나라 확장을 위한 그들의 헌신에 감동이 일렁였다. 교구행사를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시간은 나에게 피정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취재현장이 하느님을 경험하고 신앙을 키워가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1년 전, 가톨릭신문에서 명예기자 모집공고를 보았다. 평신도 희년이었던 지난해,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0)라는 말씀이 다시금 나를 재촉했다. 2027년 창간 100주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톨릭신문의 사시인 ‘소식보도, 보조일치, 조국성화’의 정신에 따라 나는 가톨릭신문 미디어를 통한 신앙 표현의 길에 들어섰다.

31년 전 신문 읽던 남편, 26년 전 시아버님의 수동카메라와 본당월보, 16년 전 전주교구주보 ‘숲정이’의 보도기자, 1년 전 ‘가톨릭신문’의 명예기자, 이 한 줄 안에서 나는 나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본다. 하느님 안에서 일치하며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명감의 무게도 느낀다.

31년 전, 신문을 펴고 맞선상대가 되었던 남편은 지금은 내 카메라가방을 들고 취재현장을 함께 다니는 멋진 로드매니저가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맞선 당시 남편이 보던 신문은 스포츠신문이었다. 신문읽기가 지식인의 표상이라는 믿음에 살짝 금이 가긴 했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어야 결혼이 이루어진다’는 항간의 진리도 체험했다. 31년 전 신문 읽던 남편은 이제 아내의 기사를 읽는 첫 번째 독자가 되었다. 스포츠기사에 열광하던 그 눈빛은 아니어도 한 여자의 마음을 한 남자에게 따뜻하게 연결시켜주었던 신문의 긍정성을 믿기에 나는 오늘도 남편과 함께 전주교구의 취재 길에 오른다.

오안라(안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