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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가톨릭 문화유산 순례] (하) 체코 - 교회 예술과 문화의 아름다움

체코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19-10-15 수정일 2019-10-16 발행일 2019-10-20 제 316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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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화 빛에 이끌리고, 작은 아기 예수상에 미소 짓다
600년 걸쳐 완공한 비투스대성당 웅장한 외관과 유리화로 알려져
고해성사 비밀 지킨 순교자 무덤도
전례맞춰 옷 갈아입는 아기 예수상 교황 “예수님의 순수함 드러내”
각 나라서 봉헌해온 의상 전시도

체코 프라하는 많은 별명을 가진 도시다. ‘황금의 도시’, ‘백탑의 도시’, ‘유럽의 진주’, ‘북쪽의 로마’…. 모든 별명들이 프라하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들이다.

보헤미아 왕국(1198~1918년)의 수도로서 오래 전부터 금융, 무역, 학문의 중심지였던 프라하는 지금도 여전히 예술과 낭만의 도시로 많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프라하는 과거의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교회 문화유산들로도 가득하다.

이번 동유럽 순례에서는 체코 프라하의 ‘성 비투스대성당’과 ‘승리의 성모와 프라하의 아기 예수성당’(이하 아기 예수성당)을 찾아가 보았다.

■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대성당

프라하 성은 규모로 보나 지위로 보나 프라하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대로 체코 통치자들의 궁전이었던 프라하 성은 지금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한 채의 궁전과 세 채의 성당, 수도원 등으로 이뤄진 프라하 성에는 성 비투스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1344년 착공해 1929년에야 완성된 성 비투스대성당은 웅장하고 거대한 외관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것은 체코의 국민 화가인 알폰스 무하(Alfons Maria Mucha·1860~1939)의 유리화 작품이다.

실용미술과 순수미술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벌인 대표적인 아르 누보 화가인 무하는 어머니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덕분에 어릴 때부터 교회가 생활의 중심이었고, 수도원에서 기숙하며 소년 성가대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무하의 작품은 체코에 가톨릭을 전파한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일생을 담고 있다.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은 형제로,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터키 콘스탄티노플에서 교육을 받았다. 둘은 지금의 체코 동부인 모라비아에 파견돼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일했다. 또한 두 성인은 전례서들을 자신들이 창안한 알파벳의 슬라브 말로 번역했다. 러시아어 표기에 쓰이는 키릴 문자는 치릴로 성인의 이름을 따 명명된 것이라고.

보통 스테인드글라스는 여러 유리조각을 붙여 하나의 그림을 구성해 내는 모자이크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성 비투스대성당에는 ‘고해자들의 수호성인’인 네포묵의 성 요한의 무덤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왕비의 고해 신부였는데, 국왕이 왕비의 고해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요구했을 때 이를 단호히 거부해 미움을 받게 됐을 뿐만 아니라 국왕과 대주교 간의 논쟁에도 휘말리게 됐다고 한다. 결국 성인은 고문 끝에 결박된 상태로 1393년 프라하의 카렐교에서 블타바(Vltava) 강에 던져져 순교했다.

고해성사의 비밀을 끝까지 지킨 순교자로 성인의 모습을 담은 성화와 성상들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어 침묵을 표현한 모습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다. 또한 성인은 다리 위에서 강물에 던져져 순교했다는 이유로 다리의 수호성인으로도 불린다. 오늘날 카렐교에는 성인의 동상과 동판이 있다.

체코 프라하 성 비투스대성당 내에 있는 알폰스 무하의 유리화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체코 프라하 성 비투스대성당.

체코 프라하 카렐교에 있는 네포묵의 성 요한의 동판. 동판의 위치가 성인을 강물에 던진 자리다.

■ 프라하의 아기 예수성당

“내 모습대로 밀랍인형을 만들어 주세요.”

16세기 후반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 발현한 아기 예수님은 요셉 수사에게 천상의 얼굴 표정을 그대로 담은 성상을 만들 것을 청했다. 이 아기 예수님은 귀족 가문의 가보로 전해지다 마리아 만리케즈라는 여성이 보헤미아 귀족과 결혼하게 되면서 프라하로 옮겨졌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아기 예수상은 겉모습과 달리 많은 시련을 겪게 된다.

마리아 만리케즈의 딸, 마리아 폴리세나는 1628년 극심한 빈곤상태였던 승리의 성모 가르멜 수도원에 아기 예수상을 기증해 수도원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한다. 하지만 그 후 전쟁이 일어나면서 아기 예수님에 대한 신심은 침체되고, 아기 예수상은 1631년 성당을 약탈한 작센 군대에 의해 팔이 부러진 채 방치되고 말았다.

쫓겨났던 수도 공동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치릴로 신부는 쓰레기더미에서 예수상을 찾아냈다. 치릴로 신부는 예수님의 팔과 경당을 새로 만들어 드리고 1655년에는 아기 예수님의 대관식이 거행됐다. 이어 프라하의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신심이 이웃나라로 확산됐고, 20세기 들어서는 선교사들과 이민자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졌다.

신자석 오른쪽에 자리한 아기 예수 제단의 모습은 수직 구도로는 예수님의 신성을, 수평 구도로는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낸다. 제단 주위 벽면에는 세계 각국 신자들의 감사 인사 표석들로 가득했다.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은 사제의 제의처럼 교회의 전례시기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또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봉헌한 각 나라의 민속의상 등 예수님의 옷을 모은 전시실도 성당 내에 마련돼 있다.

프라하의 아기 예수성당을 관할하는 가르멜 수도원장 파벨 폴라(Pavel Pola) 신부는 “작년 한 해 동안 45만 명이 이곳을 방문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아기 예수님은 예수님의 순수함과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낸다고 말씀하셨듯이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을 만난 분들은 더 이상 하느님을 심판하는 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한 폴라 신부는 “신이신 예수님이 가장 작고 미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가르멜회의 전통과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두 곳의 동행 취재를 마친 후 관광객들로 가득한 카렐교를 걸었다.

다리 위에는 수많은 성상과 십자가가 있고, 사람들은 줄을 지어 기다리다 성상을 어루만지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정권의 지배로 인한 종교 탄압으로 신자 비율이 추락하고, 교세가 침체됐다고는 하지만 체코는 867년 가톨릭이 전파된 후 국민의 90% 이상이 신자였던 나라다.

역사의 격변 속에서도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교회 유산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체코에 신앙의 불이 뜨겁게 타오르기를 기도하며 9일간의 동유럽 가톨릭 문화유산 순례를 마무리했다.

프라하의 아기 예수상

아기 예수성당 내 의상 전시실에 있는 한복. 2011년에 한국인 신자가 선물한 것이다.

체코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