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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방부 윤철민 군무원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9-10-15 수정일 2019-10-15 발행일 2019-10-20 제 316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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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에도 변치 않았던 신앙… “새 희망 찾았어요”
마지막 진급 기회 놓쳐 절망했을 때조차 오히려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에 더 열심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 확신 갖고 기도
곧장 군무원 합격해 새로운 삶 선물 받아

윤철민 군무원은 “하느님은 제 마음을 잡아 주시고 용기를 잃지 않게 해 주셨다”고 말한다.

국방부 직할 제4284부대 국방 사이버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윤철민(실바노·45·군종교구 공군 칠성대본당) 군무원은 최근 1년여 사이에 인생에 있어서 큰 시련과 변화를 겪었다.

윤철민 군무원은 2000년 2월 공군 장교로 임관해 정보통신 병과에서 올해 7월까지 19년 6개월간 복무하고 전역했다. 전역 후 9월 1일부로 국방부 군무원(4급)으로 임용됐다. 현역 장교에서 예비역으로, 다시 군무원으로 신분이 바뀌는 과정은 고뇌와 잠깐의 절망을 거쳐 희망을 다시 찾고 궁극적으로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온 45년의 세월을 뒤돌아보는 시기이기도 했다. 윤 군무원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은 것은 오직 신앙이었다.

직업 군인 특히 장교는 진급에 울고 진급에 웃는다. 진급 발표를 앞두고 느끼는 초조감과 심리적 압박은 대입 합격자 발표를 앞둔 수험생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생겨난 말이 ‘초조주’다. 진급 발표일이 다가올 때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 마시는 술이라는 뜻이다. 진급 대상자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선후배 군인들, 같은 군본당에서 신앙생활하는 신자 군인들이 모여 초조주를 마시곤 한다. 진급 발표가 끝나면 진급에 성공한 장교와는 축하주를, 실패한 장교와는 위로주를 마시는 전통이 있다.

윤 군무원은 지난해가 중령에 진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장교들은 계급별로 정년이 있어 정년 전에 진급하지 못하면 군복을 벗어야 한다. 마지막 진급 심사를 앞둔 시기, 윤 군무원과 아내는 평소처럼 열심히 묵주기도도 하고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에도 거의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본당 봉사활동도 더 열심히 하며 진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초등학생 자녀와 봉양하고 있는 부모님을 걱정하며 간절히 기도했지만 진급에 실패했을 때, 제 자신이 정말 부족하다고 여겨져 좌절했습니다. 또 ‘하느님이 나와 가족의 기도를 정말 들어 주시지 않는구나’ 싶어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4월 군종교구 공군 칠성대본당을 사목방문한 교구장 유수일 주교와 본당 공동체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철민 군무원 제공

하지만 윤 군무원은 신앙생활만큼은 이전과 다름없이 흐트러짐이 없었다. 장교들은 진급에서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성당에 잘 나오다가도 모습을 감추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대로 진급에 성공한 장교는 성당에 더 열심히 나오고 감사의 의미로 새로운 직책을 맡곤 한다. 진급 여부에 따라 신앙의 부침이 따라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려니’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윤 군무원은 달랐다. 마지막 진급기회를 살리지 못해 전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음에도 공군 칠성대본당(주임 홍헌표 신부)에서 본래 맡고 있던 병사분과장과 전례분과장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본당 신자들은 ‘이런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라며 의아해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윤 군무원은 중고등학교 때 서울대교구 본당에서 복사와 전례단, 성가대에서 꾸준히 활동했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주일학교 교사로도 봉사했다. 칠성대본당에서 병사분과장과 전례분과장을 맡았던 것도 과거 민간본당에서 활동한 경력이 밑바탕이 됐다.

공군 장교로 군생활 하며 아내와 맞벌이를 하느라 주말 부부로 지내다 보니 군본당보다는 민간본당에 적을 둔 시기가 더 많았지만 15년 전쯤 초임 대위 때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국직부대 공소 미사를 도맡아 도운 일도 있다. “2주에 한 번씩 육군 부대 군종신부님이 수요일 저녁 미사를 주례하러 오셨습니다. 미사가 없는 주에는 병사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공소예절을 진행하고 간단한 음식을 나눴습니다. 매주 수요일이면 공소에 불을 켜고 난방을 하고 간식을 준비해 놓았는데 부대 사정으로 인해 어느 주에는 한 명도 공소에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윤 군무원에게 공소 봉사는 누가 시키거나 알아주는 일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자신이 꼭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또한 봉사의 참된 의미를 알고 더욱 튼튼한 신앙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시절에는 성경 구절 중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윤 군무원은 마지막 진급 기회를 놓쳐 절망했을 때 15년 전 공소에서 병사들과 신앙생활을 하던 시절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느님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함께하고 계셨고 지금도 함께하신다는 확신이었다.

“전역하고 군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경쟁률이 매우 높아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바로 합격했습니다. 저는 비로소 느꼈습니다. 하느님은 제가 그분을 멀리하지 않도록 제 마음을 잡아 주시고 용기를 잃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저에게 일어난 일들을 통해 앞으로도 또 고난과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꾸준히 기도하고 하느님을 믿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7월 군종교구 공군 칠성대본당 여름신앙학교 물놀이에 함께한 윤철민 군무원(왼쪽에서 네 번째)과 어린이들. 윤철민 군무원 제공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