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제3회 국제학술대회 ‘한일 관계의 역사, 그리고 기억의 치유’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19-10-15 수정일 2019-10-16 발행일 2019-10-20 제 316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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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은 결국 ‘이웃’… 평화 향한 새 발걸음 시작해야
역사 문제 성찰하지 않고 경제만 쌓아온 한일 관계 ‘문제’
시민사회 연대가 화해의 발판
양국 힘 합쳐 바른 역사 가르쳐야 

‘한일 관계의 역사, 그리고 기억의 치유’를 주제로 10월 9일 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열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 제3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종합토론을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종교계와 학계가 나서 평화의 길을 모색했다.

가톨릭신문사(사장 이기수 신부)와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강주석 신부)가 공동 주최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 제3회 국제학술대회가 10월 9일 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열렸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신부)가 주관하고 경기도가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는 ‘한일 관계의 역사, 그리고 기억의 치유’를 주제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현재 갈등 관계에 놓여 있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 역사를 성찰하고,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가톨릭신문사 사장 이기수 신부는 환영사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해 대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한국과 일본 정부 간에 외교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며 “이러한 시점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 역사적 기억의 극복

제1회의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교수(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한국학과장)는 평화실현의 한 방편으로서 역사적 기억의 극복을 주장했다.

역사적 기억은 특정한 사회 내에서 만들어지지만 ‘개인화’돼 나타난다고 밝힌 쿠르바노프 교수는 “대립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을 목표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로 인해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쿠르바노프 교수는 “이는 역사적 기억이라기보다, 그 지역의 모든 세력에 대한 부정적이고 위협적인 이미지 형성과 연결된 한 가지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객관적인 상황은 변화하기 어렵지만 상호 이미지는 개선될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억의 치유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 회복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상호 이미지 개선을 위해 일본교회가 앞장섰다.

지난 8월 15일 ‘한일 정부 관계의 화해를 향한 담화’를 발표하며 식민지 가해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죄의 뜻을 전한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회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일본 삿포로교구장)가 기조강연을 맡았다. 가쓰야 주교는 다시 한 번 담화 내용을 되짚고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고백했다. 또한 “전쟁으로 돌입하는 일본의 국가 정책에 일본교회가 협력했던 사실도 깊이 반성한다”고 사죄했다.

가쓰야 주교는 모든 전쟁 행동을 비합법적 행위로 정의하는 ‘비폭력 평화 구축’을 주장하며, 현재의 대립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사랑이란 적대하는 상대를 인정하는 일이고, 바로 철저히 상대방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행동이다”고도 덧붙였다.

제2회의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총무 미쓰노부 이치로 신부(일본 상지대 교수) 역시 가해자로서 사죄의 뜻을 전하며 현재 일본 정부와 미디어가 행하고 있는 과오를 지적했다. 특별히 미쓰노부 신부는 한국교회의 사회참여와 일본 정의평화협의회의 활동을 부각시켰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국가로부터 피해를 당한 이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감당한 한국교회에 일본교회가 연대해 온 사실을 설명했다. 이어 “정권의 사회 컨트롤이 강해지고 있는 일본에게 빛과 희망은 한일 민간 교류, 특히 평화와 인권문제를 둘러싼 시민운동, 종교인과 학자의 연계”라고 강조했다.

■ 화해를 위한 노력-연대

아직 풀지 못한 한일 갈등과 대립을 화해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제3자 입장에서 쿠르바노프 교수는 역사적 기억을 긍정적 이미지로 극복해 동북아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쓰야 주교와 미쓰노부 신부는 가해 당사국으로서 잘못을 인정하고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제2회의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피해 당사국의 입장으로 역사 기억 문제를 바라봤다. 이 주교는 한일 문제의 근본 원인을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역사 문제에 있다고 판단하고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화해를 위한 노력에는 가해자의 사죄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아베 정권 하에서 사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직시하며 시민들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일본 정부의 사죄를 끝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서 “정부 대신 시민들 안에서 사죄하고 화해를 위한 연대를 늘려간다면 이미 양국의 화해는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24회째 이어오고 있는 한일주교교류모임을 비롯해 교회 공동체의 기도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제1회의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양기호 교수 역시 “한일 양국의 시민 사회가 인권과 평화의 원칙에 서서 양국 간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을 극복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종합토론

제3회의에서는 한일관계의 악화 원인과 해결 방안 등에 대한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백장현(대건 안드레아) 박사가 사회를 맡았고, 미쓰노부 신부와 쿠르바노프 교수, 나가사와 유코 박사(일본 동경대 한국학연구소), 종교의자유와비즈니스재단(RFBF) 브라이언 그림 이사장,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박문수(프란치스코) 소장, 최형묵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가 토론에 나섰다.

종합토론 참가자들은 현재 악화된 한일 관계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한국과 일본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이웃이라는 인식 하에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한일 정부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식 차이가 분쟁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그동안 양국 교류가 근본적인 역사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외면하고 경제 중심으로만 흘렀기 때문이라는 데 공감했다.

특히 아베 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성의 있게 성찰할 것과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 정부도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와 별개로 시민사회 간 연대와 협력이 평화를 향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특별히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이 모였다. 그 방법으로 양국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교과서 제작,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제안했다.

아울러 한일 관계개선과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한국과 일본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한일주교교류모임의 취지 안에서 교회 내 각 계층 간 교류 협력을 증진시키고 서로를 향한 ‘반일’과 ‘혐한’ 등의 감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 또한 양국의 관계 악화 국면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재일 조선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