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46) 부동의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9-10-15 수정일 2019-10-15 발행일 2019-10-20 제 316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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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청 앞 천막농성 443일, 원주지방환경청 현관 앞 비박농성 364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 천막농성 50일, 케이블카 예정노선 오색-대청봉 구간과 5개 법정등산로 오체투지 오름, 설악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순례 200㎞, 2019년 8월 6일 521개 시민사회단체 케이블카 반대 선언식을 마지막으로 수많은 집회와 기자회견, 집시법 위반 재판과 벌금, 환경부 서울사무소 앞 천막농성 40일. 2019년 9월 16일 케이블카 부동의 선언. 2008년부터 시작된 투쟁의 길은 험난했다. 함께 저항함으로써 설악산 어머니를 지켰고 산양 형제와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다. 꿈은 한 발 다가섰고 삶은 행복해질 것이다. 함께한 모든 이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부동의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 올린 짧은 글이다.

1992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설악산 언저리로 옮긴 지 27년, 환경의 눈으로 들여다본 설악산은 온통 상처와 아픔투성이였고 국립공원이 아니라 유원지였다. 설악산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며 관계인지를 수없이 물었다. 언제나 대답은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존재이며 아이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자연유산이라는 것이었다. 설악산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 됐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물러설 수 없는 삶이 이어졌다.

3차에 걸친 오색케이블카 반대 투쟁은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 되는 전 국토의 6%에 지나지 않는 22개 국립공원의 마지막 숨통을 지키는 일이며 설악산 어머니와 산양 형제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를 갖추는 일이었다.

환경부 서울사무소 앞 천막농성 40일째를 맞는 날, 오늘 결정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고 피를 말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불안하지만 불안하지 않은 설레는 불안에 휩싸이곤 했다. 부동의됐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지만 오후에 환경부 장관 발표가 있기까지 믿기지 않는 마음이었다.

축하 전화가 쏟아지면서 함께했던 많은 이들과 더불어 이룬 값진 결과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권력에 기대어 탈법과 조작으로 밀어붙였던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끝났다. 다시는 설악산을 돈벌이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어야 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설악산의 상처가 아물고 아픔이 사라진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아이들에게 되돌려줘야 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의무며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일이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케이블카 설치 궐기대회를 하는 양양군의 모습 속에서 권력과 자본의 폭력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본다. 끝까지 온몸으로 설악산 어머니와 산양 형제를 지킬 것이며 부끄럽지 않은 조상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