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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하얼빈 의거 110주년, ‘신앙인 안중근’ 발자취를 따라

중국 신동헌 기자
입력일 2019-10-15 수정일 2019-10-16 발행일 2019-10-20 제 316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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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평화 향한 간절한 염원,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거사 직전 열하루 행적 따라 순례
하얼빈역 의거 현장 지점 볼 수 있어
독립 염원 담은 마지막 유묵 ‘청초당’ 비석에 새겨진 필적 보며 숨결 느껴
「동양평화론」 집필했던 뤼순 감옥서 평화를 위한 평신도의 사명 다짐

올해는 안중근(토마스·1879~1910)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10주년이 되는 해다. 안 의사는 조선의 항일 의지를 불태우는데 도화선이 됐고 동양평화를 위해 헌신한 조국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을 수호하고 하느님을 사랑한 신앙인 안중근의 모습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기념하고 그의 신앙 행적을 찾기 위해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와 대구대교구 평신도위원회(회장 이동구)가 중국을 순례했다.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인 중국 하얼빈역 1번 플랫폼. ‘안중근 의사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라는 현판과 함께 바닥에 의거 현장이 표시돼 있다.

■ ‘천당지복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

10월 3일, 대구대교구 평신도위원회 순례단(이하 순례단)은 순례를 시작하며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을 찾았다. 한국과 달리 기온은 영하에 가까웠고 바람은 매서웠다. 옷깃을 여미면서 순례단은 하얼빈역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향했다.

2014년 1월 개관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2017년 하얼빈역 개축 공사로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이전했다가 올해 3월 다시 현재 장소에서 두 배 규모로 확장 재개관했다. 거사 직전 하얼빈에서 열하루 동안 머물렀던 안 의사의 행적을 중심으로 생애와 사상, 거사, 그리고 뤼순 감옥에서의 순국 과정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순례단은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는듯 전시물을 읽고 또 읽었다. 하얼빈역 1번 플랫폼 바로 앞에 있던 귀빈용 대합실 일부를 개조한 이곳은 기념관 내부에서 의거 현장을 볼 수 있다. 평범한 플랫폼이지만 바닥의 표시가 안 의사의 의거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으로부터 84년 뒤인 1993년,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안 의사의 의거를 인정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당시 김 추기경은 “가톨릭교회는 민족과 조국을 불의의 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전쟁 중에 행한 살인 행위는 범죄로 단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79항 ‘어떤 부족이나 종족이나 소수 민족을 완전히 말살시키려는 저 행위들을 숙고하여야 하며, 이는 잔혹한 범죄로 강력히 규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범죄를 명령하는 자들에게 공공연히 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저 사람들의 정신은 최상의 찬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에서 근거를 찾았다. 김 추기경은 “조국애와 민족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친 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데 노력해 나갈 것”을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기념관에서는 안 의사의 생애와 사상뿐만 아니라 신앙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대구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김정일(티모테오) 부회장은 “의거 현장에 와서 보니 평소에 알고 있었던 내용을 가슴 깊이 새겼고 신앙과 애국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류해석(시몬) 회장도 “안중근 의사는 나라와 부모, 하느님을 사랑한 참 신앙인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뤼순 감옥의 안중근 의사 독방. 안중근 의사는 이곳에 수감된 상황에서도 자서전과 유묵,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 ‘청초당’- 푸른 언덕을 희망하며

안 의사는 사형 집행 전 안정근·공근 두 동생에게 “내가 죽으면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나라의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 의사가 의거 당일에도 찾았다는 하얼빈공원은 조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공원은 1900년에 만들어진 하얼빈 최초의 공원으로 공원 한편에 안 의사의 유묵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유묵비 앞면에는 ‘청초당’, 뒷면에는 ‘연지’라고 새겨져 있다. ‘풀이 푸르게 돋은 언덕’이라는 뜻의 ‘청초당’은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서거 이틀 전 독립의 염원을 담아 남긴 마지막 유묵이다. 순례단은 유묵비 앞에서 안 의사의 인장에 손을 대어보며 그의 숨결을 느꼈다.

순례단은 조선과 동양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라는 안 의사의 염원을 마음에 새기며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순례 중 랴오닝성 다롄성당에서 봉헌된 미사 강론 중 조환길 대주교는 안 의사의 뜻을 이어받아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조 대주교는 “순례 동안 ‘청초당’에 관해 묵상했다”며 “따뜻한 봄이 되어 풀이 푸르게 돋듯이 평화가 가득한 세상이 되길 기도하며 이번 순례를 마음 깊이 간직하자”고 말했다.

■ 동양평화, 모두 함께 삼창하자

1910년 2월 14일, 안 의사는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두 아들을 보내 ‘항소하지 말고 죽으라’는 뜻을 전한다. 당시 언론은 일제 관헌들 앞에서 의연한 조마리아 여사의 모습을 보고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한다. 김마리나(마리나) 여성위원장은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 의사의 어머니를 보며 느꼈다”며 “자녀를 신앙으로 잘 키우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뤼순 감옥의 안 의사 사형장에서 잠시 침묵하며 기도를 바쳤다. 동양 평화를 간절히 바라며 행동으로 실천한 안 의사의 뜻을 이어받아 평화를 위한 평신도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담은 기도였다.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한국, 일본, 중국 3국의 평화를 통해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희망한 ‘동양평화론’은 비록 미완에 그쳤지만 오늘날에도 중요한 사상으로 꼽힌다. 평신도위원회 이동구(마티아) 총회장은 “이번 순례를 통해 평화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복음을 통해 온 인류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신도들이 노력해야 하겠다”고 전했다. 조 대주교는 인천공항 성당에서 봉헌된 순례 마지막 미사에서 “오랜 기간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녀오게 되어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마음이 든다”며 “순례의 여운이 많이 남을 것 같고 이러한 여운을 어떻게 삶으로 드러낼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전했다.

중국 뤼순 감옥의 안중근 의사 사형 장소.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거사를 치른 안 의사는 이듬해 3월 26일 이곳에서 불꽃 같았던 삶을 마감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오른쪽 맨 앞)를 비롯한 대구대교구 평신도위원회 순례단이 10월 6일 뤼순 감옥을 걷고 있다.

조린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 유묵비. 앞면에는 ‘청초당’, 뒷면에는 ‘연지’라고 쓰여 있다.

중국 신동헌 기자 david050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