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친구 할매 땜에 속이 타는 우리 노모 / 김형태

김형태(요한)rn변호사
입력일 2019-10-15 수정일 2019-10-15 발행일 2019-10-20 제 3166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아, 글쎄 수산나가 대통령 묵주반지 낀 것도 꼴 보기 싫다면서 욕을 해대는구나. 저 놈이 빨갱이들한테 나라를 온통 갖다 바친다면서… 신자라는 할매가 대통령 싫다고 묵주반지 낀 거까지 뭐라 하니 참 큰일이다.” 매일미사 다녀온 노모가 탄식을 합니다. 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대통령이 뭘 더 바라서 빨갱이들한테 나라를 갖다 바친다는 건지 그 친구 할매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미사에 참례합니다. 당신은 레지오 마리애 모임에서 묵주기도나 병문안을 활동실적으로 인정해 주는 걸 못마땅해 합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한 걸 가지고 무슨 실적이냐고. 그 대신 새벽마다 동네골목 청소에 열심입니다. 그리고 성당이나 동네에서 어렵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잘 해 줍니다. 손자까지 둔 나는 미수(米壽)의 노인네를 엄마라 부르며 이럽니다. “엄마의 흠은 자화자찬이 킹 대 마왕이란 거야.” 당신도 지지 않고 응수합니다. “내 속에서 나온 너는 어떻고.”

하긴 우리 노모고, 나고, 저 수산나 할매고 간에 사람들은 제가 제일이라 여기고 살아갑니다. 부처님을 믿든, 하느님을 믿든,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에 대해서는 굽힐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아니, 이제는 정치적 신념이 종교의 가르침을 넘어섭니다. 제 정치적 견해에 비춰 마음에 안 들면 주교님도 신부님도 다 빨갱이입니다. 미국의 보수적인 일부 주교들도 그런다지요. ‘자신 안에 갇혀 병들어 있는 교회보다는 사고를 무릅쓰는 교회가 수천 배 좋다’고 말씀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공산주의자라 한답니다.

나는 정말 남을 위해 살아가려 애쓴 빨갱이 한 사람을 압니다. 일제강점기 명문 중학을 다녔고 일본 유학에다 수 개 국어를 구사했습니다. 기득권층이던 그는 있는 자들이 없는 사람들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싫어서 월북을 했답니다. 그리고 북에서 고위직에 있다가 ‘인민들을 해방시키려고’ 남으로 파견됐습니다. 38선을 넘어 오다 붙잡힌 그는 수십 년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형기를 다 마치고 출소한 뒤 뒤늦게나마 가정을 꾸려 잘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또 붙들려 갔습니다. 국가안전을 해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감옥 아닌 감옥살이 다시 십수 년.

나는 그를 가둔 사회안전법이 헌법위반임을 밝히는 재판에 대리인을 맡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전두환 독재에 반대하다 잡혀 간 그 아들 변론도 했습니다. 내가 아는 멋진 신부님과 스님들을 다 포함해 따져 봐도 그 분처럼 전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자리리타(自利利他),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살라 합니다. 기독교 역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남파간첩’은 한술 더 떠서 자기보다는 이웃을 위해 살려고 평생 노력했습니다. 누가 그를 욕하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까.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한 것과 상관없이, 지극히 이타적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지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8-50)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가난한 사람들 편을 들다가 1980년 미사 집전 도중 무장 괴한들 총격에 살해됐습니다. 2018년 성인으로 시성된 그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칭송한다. 그런데 그의 배를 곯게 만드는 잘못된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를 공산주의자라 욕한다.”

그렇습니다. 교황님 말씀대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풀고 가르쳐 주신 자비는 동시에 정의를 요구합니다. 정의가 뒷받침된 자비. 자비와 정의를 위해 애쓴 이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 것입니다.

죽으면 천국 가려고 열심히 성당에 다니면서도, 자비니 정의니 하는 교회의 가르침에는 별 관심이 없고 정치적으로 편을 갈라 상대를 빨갱이라 딱지 붙이는 친구 할매 땜에 낼 모레가 아흔인 우리 노모는 오늘도 속이 탑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rn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