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 본당 주보성인]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10-15 수정일 2019-10-15 발행일 2019-10-20 제 316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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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발현 체험하고 성심 공경 전파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성인은 예수의 발현을 체험하고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을 널리 퍼뜨리는데 공헌한 수도자다.

1647년 프랑스 샤롤레 지방 베로브르 로트쿠르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려서부터 성체 신심이 남달리 뛰어나 늘 주님과 함께하기를 열망했다. 성인은 1671년 파레 르 모니알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 입회해 ‘마르가리타 마리아’라는 수도명으로 수도서약을 했다.

수도의 길을 걷던 성인은 1673년 12월 27일부터 18개월 동안 4차례에 걸쳐 예수의 발현을 체험했다. 성인에게 나타난 예수는 성인이 ‘예수 성심’을 널리 전하는 도구로 선택됐다고 말했다. 특히 성인이 1674년 성체조배를 하던 중 발현한 예수는 성인에게 자신의 성심을 열어 보이며 죄인들의 냉담에 탄식하면서 “적어도 너는 온 힘을 다해 죄인들의 배은을 보속하라”고 요청했다. 발현한 예수는 그 방법으로 매월 첫 금요일에 영성체를 하고, 매주 목요일 밤에 성시간을 보내라고 가르쳤다. 또한 예수성심축일을 제정할 것도 요구했다.

성인은 발현을 통해 받은 가르침을 수도회 장상과 동료 수도자들에게 전하고, 함께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나 수도회 장상을 비롯한 동료 수도자들은 성인의 말을 믿지 않았고, 성인의 요청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성인의 지속적인 주장에 신학자들이 소집되기까지 했지만, 성인이 환영에 시달린다는 결론을 내는데 그쳤다. 이렇게 동료에게도 교회에게도 수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성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예수의 메시지를 실천해나갔다.

성인이 받은 메시지의 가치는 예수회 신부인 클로드 라 콜롱비에르 성인이 발견했다. 1675년 성인이 머문 수녀원의 고해사제였던 콜롱비에르 신부는 성인이 전하는 메시지에 담긴 위대함을 알아차리고 성인이 체험한 발현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당시 파레 르 모니알의 예수회 원장이었던 콜롱비에르 신부는 성인의 진실된 주장을 지지하면서, 성인의 영적체험이 올바르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성인에게 그 영적 체험을 글로 기록하라고 조언했다. 콜롱비에르 신부를 통해 다른 예수회 신부들도 성인의 발현 이야기를 접했는데, 그들도 예수 성심의 요청이 교회 전체에 알려져야 하고 인정돼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성인이 체험한 예수 발현은 수도회 안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수도회 안에서 반대를 받던 성인은 수도회의 수련장이 됐다. 1686년 성인이 속한 파레 르 모니알 수도원은 처음으로 예수 성심 축일을 거행했고, 성모 방문 수도회의 다른 수도원들도 예수 성심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다. 이어 프랑스의 다른 교구들에서도 차례로 공식적인 예수 성심 축일을 지내게 됐다. 성인은 1690년 10월 갑작스러운 병으로 선종했다.

성인의 선종 이후 교회는 성인에 대한 세밀한 조사를 통해 성인이 받은 사적 계시가 교회의 신앙과 윤리에 어긋남이 없다고 판단했고, 1864년에는 시복식을, 1920년에는 시성식을 거행했다.

예수 성심을 전파한 성인의 업적을 기리며 제2대리구 청계본당은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삼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