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죽음에게 물었더니 삶이라고 대답했다」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19-10-07 수정일 2019-10-08 발행일 2019-10-13 제 3165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손영순 수녀 지음/368쪽/1만7000원/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삶의 완성 위해 죽음 잘 준비해야”
임종환자 돌봐온 손영순 수녀 호스피스 병동의 이야기 담아
‘모든 이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 종점에 다다른 줄 안다. 하나 두려워 마라. 종점은 축복이다.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축복의 문이다. 지난 일에 만족은 못할망정 한 점의 부끄러움을 주님께 내려놓고 용서를 빌 듯 우리의 인생을 새로 시작해보자.’

간암 말기였던 한 남자는 새벽녘 병실을 나와 간호사실 앞에 있는 노트에 한 편의 글을 남겼다. 배에 복수가 차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열린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남자는 얼마 뒤 세상을 떠났고 손영순 수녀는 그가 남긴 ‘종점(終點)은 시점(始點)’이라는 글을 책에 실었다. 손 수녀가 쓴 「죽음에게 물었더니 삶이라고 대답했다」에는 이처럼 삶을 완성해 가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손영순 수녀.

임종하는 이들을 기도와 현존으로 돌보기 위한 사명으로 1877년 영국에서 설립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1963년 한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90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 입회한 손 수녀는 서울 모현가정호스피스와 포천 모현의료센터에서 임종환자와 사별가족들을 돌봤다.

책에는 수많은 죽음과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어린 두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서른두 살의 엄마는 “제 곁에 저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깨달아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얼굴 전체에 암이 퍼져 말을 하거나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여성은 병원 마당에서의 짧은 여행을 한 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에요, 오늘 아름다운 여행을 했어요”라는 감사의 말을 글로 남겼다. 무엇 하나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감사함을 먼저 느끼는 이들의 말을 통해 손 수녀는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손 수녀는 “내게 호스피스를 가르쳐준 가장 훌륭한 스승은 앞서 돌아가신 많은 환자들이었고 유일한 교재도 그분들이었다”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시간들을 동반하면서 그들의 삶을 찬란하게 지는 태양, 저녁노을로 만들어 주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 수녀는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잘 산다는 것”이라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소중한 사건”이라고 전했다.

책 속에는 수많은 슬픔의 순간이 담겼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완성할 수 있다고 손 수녀는 강조한다.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죽음은 막연하게 다가오기 마련이죠. 간접적으로나마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 구체적인 과정을 안다면 모두가 힘들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구입 문의: 02-771-8245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