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새 둥지 마련 1년’ 노숙인 무료 급식소 ‘안나의 집’을 가다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9-10-07 수정일 2019-10-08 발행일 2019-10-13 제 3165호 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두 팔 벌린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노숙인 맞이합니다”
땅도 돈도 없던 열악한 상황서
자활시설·쉼터 갖춘 새 집 마련
많은 이들 도움으로 이룬 기적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식당에서 배식을 준비중인 김하종 신부.

“인간에게 밥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듯하게, 친절하게 봉사하세요.”

성남 중원구 마지로 28번지의 노숙인 무료 급식소 ‘안나의 집’(대표 김하종 신부). 지난 10월 4일, 오후 4시 급식 시간이 되자 건물 지하 1층 식당에서는 본격적인 배식에 앞서 앞치마 차림의 김하종 신부(오블라띠선교수도회)가 봉사자들에게 ‘사랑으로 봉사할 것’을 부탁했다. 이어서 김 신부는 입구 쪽으로 가서 식당에 들어서는 이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한 후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하이파이브’로 손바닥을 맞댔다.

건물 입구 왼쪽에서 경사로로 지하 식당과 바로 연결되는 식당 입구 공간은 2018년 9월 1일 안나의 집이 이곳으로 신축 이전한 후 김 신부가 마음 편해하는 장소 중 하나다. 천장이 있어 노숙인들이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궂은 날씨에도 불편하지 않게 배식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주변의 민원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곳에는 그림과 화분이 설치돼 있다.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왔을지언정 존중받아야 할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 차원에서다.

식당도 한 번에 12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지만, 식탁을 한 줄 줄여서 92명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좀 더 쾌적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김 신부는 배식이 시작되기 전 식당 안에 음악을 틀었다. 흥겨운 트로트와 가요 선율이 홀을 채웠다. 김 신부 모습에서 2층 기도실의 손이 없는 예수님 십자가 밑에 걸린 구절이 겹쳐졌다. “봉사자는 예수님의 손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은 봉사자의 손을 통해서 움직이십니다.”

‘안나의 집’ 신축 이전 1주년을 기념하며 건물 맨 위층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 기적이 쌓인 곳

최근 안나의 집 건물 맨 위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됐다. 신축 1주년을 맞아 마련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양손을 벌린 부활하신 예수님 형상이다. ‘양손을 벌려 고통받고 어려운 이들을 따듯하게 환영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본받아 안아주고 나눠주는 기관이 되겠다’는 의미다. 설계상 계획에 있었으나 재정 문제로 1년이나 늦게 자리를 잡았다.

안나의 집이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진 것은 ‘기적’, 또 ‘기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2018년, 20년의 건물 사용권 계약 종료를 앞두고 2016년부터 새집 마련을 고민했던 안나의 집은 예상치 못했던 보이지 않는 손들의 도움과 후원 속에 집을 마련했다. 땅도 없고 기금도 없고 대표 김하종 신부가 건강을 잃는 외적 여건이었지만 불가능은 가능으로 이어졌다. 안나의 집 1층 카페 벽면에 새겨진, 2006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후원한 이들 명단은 ‘혼자가 아닌 함께’ 이룬 기적을 대변해준다.

약 1350㎡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새 건물은 무엇보다 편안함과 안전이 돋보인다. 식사공간은 물론, 주방이 넓어져서 봉사자들의 음식 준비가 수월해졌다. 3층 노숙인 자활 시설도 넓어진 공간으로 입소자 1명당 1인 침대와 1인 개인 서랍이 사용되고 있다. 30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쉼터와 기도실까지 갖춰졌다. 노숙인들을 더 잘 안아주고 나눠주고, 또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집으로 거듭난 것이다. 건물 자체가 내적 상처와 불안과 방황, 소외와 아픔 속에 있는 노숙인들의 특징을 설계 안에 녹여냈다. 그래서 김 신부는 이 건물을 ‘노숙인의 기념비’라고 한다.

신축 이전 이후 봉사자 수도 늘었다. 2018년 8월 894명과 비교할 때 2019년 8월에는 1040명이 활동했다. 쌀이나 생활용품 등 후원 물품을 보내는 후원자도 많아졌다. 무료진료소는 1.5배 사용자가 증가했다. 교육 프로그램도 공간이 충분해지다 보니 참여율이 높아졌다. 인문학 강의 경우 인원은 2배나 많아졌다.

안나의 집은 ‘희망을 주는 곳’을 자처한다. “노숙인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김 신부는 “한 해 400여 명에 이르는 노숙인이 길거리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노숙인이 늘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의 운영과 자활 기회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 안나의 집은 1998년 7월 설립 이후 노숙인 복지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사회성 개발 및 적응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들의 정상적인 사회 복귀가 이루어지도록 힘쓰고 있다. 하루 평균 550여 명의 급식과 더불어 의료(내과, 정신과, 치과, 통증클리닉), 상담(실업·법률·심리), 교육(건강·알코올·성·인문학)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옷 나누기, 미용 봉사, 샤워 서비스도 병행된다.

단기, 중장기 청소년 쉼터 운영과 공동생활가정 및 청소년자립관 등은 노숙인 예방사업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날 식당에는 남성 의류가 필요하다는 배너가 걸려있었다. 김 신부는 “속옷에서부터 신발까지 남성 의류 나눔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안나의 집은 후원자 여러분들이 만들어주신 기적입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 잘하고 싶습니다. 계속 함께해 주십시오.”

※문의 031-757-6336

‘안나의 집’ 전경.

노숙인들과 손을 맞대며 인사하는 김하종 신부.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