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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성월 논단] 예수 성심은 은총의 근원

강용운ㆍ신부ㆍ인천 답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9-10-02 수정일 2019-10-02 발행일 1987-06-14 제 1559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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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못자리」역할
성시간ㆍ기도회 통해 성심의 신비 묵상토록
인간과 하느님 마음이 만나는 곳
예수의 성심은 우리 신앙생활의 못자리라고 생각된다. 마음이란 본래 지성과 의지, 생각과 감정 등이 합치는 곳일 것이다. 마음에서부터 인간의 행동은 출발한다. 좋은 행동은 좋은 생각과 감정이 합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마음이시다. 그래서 예수의 성심은 완전하시면서도 인간적 감정과 생각을 배제하지 않으셔서 인간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이 만나는 곳이다.

인간의 마음은 지극히 감정적으로 흘러 불안, 긴장, 이율배반, 변덕 등으로 끊임없이 흔들린다. 인간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데서 고뇌와 갈등을 면치 못한다. 인간의 이 고뇌에 찬 마음이 예수의 인간적인 마음에 합칠 때 방황을 멈추게 될 것이다.

구체적이며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나신 예수의 성심은 십자가 상에서이다.『목마르다』 (요한19,18)고 하신 예수의 말씀은 사랑의 갈증을 드러내신 것이다. 또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더니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렀다(요한 19,34)함은 한 없는 신앙의 원천이신 예수성심을 드러내는 말씀이다. 이와같이 목마르고 피와 물을 토해내시는 예수의 성심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상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에 말가리다 수녀에게 예수께서는 당신 성심을 보여주시고 인간의 죄 때문에 당신은 끊임없는 아픔을 겪으신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강도를 용서하신 예수 성심은 오늘도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속죄의 피와 물을 쏟고 계신다. 이렇게 하실 수 밖에 없는 예수 성심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때문이다.

부모들의 마음속에 못난 자녀일수록 더 깊이 자리잡고 있듯이 예수의 마음속에 죄 많은 이들이 더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럴수록 예수의 성심은 더욱 찔리고 아픈 것이다.

예수의 찢기우고 고통 받는 마음은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처럼 그 분은 아프고 괴로운 것이다. 그 분의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이다. 『어려운 일을 하고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오시오. 내가 여러분을 편히 쉬게 하겠습니다』(마태오11,28)고 하시면서 우리를 당신께로 초대하시는 예수의 말씀은 인간적인 마음의 초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겁없이 그리고 친근감을 가지고 예수께 가까이 나아가 우리를 닮은 마음을 만나게 된다. 예수 성심 안에서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마태오22,27)는 말씀을 예수성심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완전히 이루시면서 우리를 초대하신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통하여 교회가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공부하는 교회와 활동하는 교회를 얻은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공의회의 공헌이다. 성서공부, 공의회 문헌연구, 각종 세미나 등과 평신도들의 활발한 교회참여와 많은 활동단체들이그것 이다. 그야말로 교회는 청춘을 되찾은 것 같다. 그러나 수계생활이나 신심생활면에서는 큰 퇴보를 가져왔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교회의 큰 손실이다. 기도하는 소리는 작아지고 공부하는 소리만 높아지는 오늘의 교회가 머리만 비대해가고 몸통은 줄어가는 기형적인 교회가 될까 염려된다. 복음은 차라리 삶이지 학문이 아니지 않은가. 공부는 맹목적 믿음이 아닌 이치있는 믿음을 만들어 주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기도와 신심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공부는 오히려 교회를 위태롭게 만들기 쉽다.

차제에 예수 성심께 대한 기도와 신심을 우리 모두 활발히 찾았으면 한다.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다. 식은 예수 성심신심을 되찾기 위하여 6월 어느 날 「예수 성심의 밤」을 지낸 일이 있었다. 성모의 밤처럼 성당마당에 모셔진 성심상을 꽃과 촛불로 꾸미고 속죄의 밤으로 지냈다. 많은 신자들이 예수 성심 안에서 한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적으로 깨닫고, 죄의 추함을 알아 뉘우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외형적인 예수의 아픔, 천대, 가시관, 못에 찔림과 죽으심 등은 신자들이 동정적으로 알고 있지만, 참 고통의 원천인 예수의 마음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있었다.

전에는 매월 첫 금요일이면 예수 성심 공경의 날로 알고 많은 신자들이 고백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여하였지만 지금은 보기 힘들다.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은 모든 신심의 중심이며 교회의 심장부이다. 예수 성심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적이고,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입는 장소이다. 교회는 예수 성심에서 탄생되었고 모든 구원의 은총이 그리로부터 흘러내린다.

『예수 마음 겸손하신 자여, 내 마음을 내 마음은 열절케 하사 네 성심과 네 성심과 같게 하소서』

(가톨릭 성가 199)

강용운ㆍ신부ㆍ인천 답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