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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가톨릭 문화유산 순례] (상) 폴란드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고국

폴란드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19-09-30 수정일 2019-10-07 발행일 2019-10-06 제 316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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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성모님 뺨의 상처, 폴란드와 아픔 함께 겪은 상징으로
호국의 상징인 ‘검은 성모화’ 치유 바라는 이들의 기도 이어져
파우스티나 성녀 지냈던 수녀원에선 ‘하느님 자비의 기도’ 매일 봉헌돼

오랜 시간 동안 가톨릭 신앙의 중심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같은 서유럽 국가였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 넓히면 중부 유럽이나 동유럽에도 서유럽 국가 못지않을 만큼 각국의 상황과 문화적 특징에 맞게 신앙의 전통을 잘 이어오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주교회의는 가톨릭 신앙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중앙 일간지 종교담당 기자단과 교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9월 21~29일 동유럽 가톨릭 문화유산 답사 해외 동행 취재의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순례의 목적은 그동안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의 가톨릭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각국 가톨릭 신앙의 특징을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순례의 발자취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 기념 성당 제대. 지구본을 감싼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조각은 세파에 시달리는 인간을 의미한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쇼팽과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폴란드는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다.

위치상 중부 유럽 국가인 폴란드는 나라의 건국과 그리스도교 신앙 전파가 맥을 같이 한다.

피아스트(Piast) 왕조의 미에슈코 1세(Mieszko I)는 965년 가톨릭 신자였던 보헤미아 공국의 공주 도브라바와 결혼을 하고, 이듬해 가톨릭 세례를 받은 후 폴란드를 건국했던 것이다.

넓고 평평한 땅을 가진 덕분에 유럽의 요충지이자 대표적인 곡창 지대이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야만 했다.

1795년에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세 나라가 폴란드 영토를 나눠 가지면서 지도상에서 폴란드라는 나라는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1918년, 무려 123년 만에 독립을 되찾았지만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나치와 소련의 점령 통치를 받았고, 이에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폴란드 땅에 자리잡게 되고 말았다. 이어 종전 후에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 많은 고난을 겪다 1980년대 자유노조 운동을 거쳐 198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민주정부 체제가 수립됐다. 이처럼 험난한 역사의 질곡을 겪었음에도 가톨릭 신앙의 전통은 10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꿋꿋하게 지켜졌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생가 박물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폴란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세계적으로 사랑 받은 교황이었지만, 모국 폴란드인들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살아 있을 때 이미 동상이 세워졌고, 어딜 가나 그의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인의 고향 바도비체에는 그가 태어난 생가를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 있다. 작은 거실과 부엌, 침실 하나뿐인 전셋집에 살았던 성인의 집 바로 옆에는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성인과 가족들의 사진, 전 생애에 걸쳐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들은 물론 일찍 어머니와 형을 여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던 좁은 침실까지 조성해 놓아 교황으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검소하고 소탈한 인간 카롤 보이티와의 삶의 단면들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다.

폴란드 쳉스토호바 야스나고라 성 바오로 은수자회 수도원에 있는 검은 성모화.

■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9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첫영성체를 하기 한 달 전이었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인생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성인이 자주 찾아가 위로와 힘을 얻고자 한 곳이 있었다. 바로 검은 성모님이 계신 쳉스토호바였다.

쳉스토호바 야스나고라 성 바오로 은수자회 수도원 안에 있는 검은 성모화는 호국의 상징이면서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도회 설립 목적 자체가 성모화를 지키는 것이었을 정도로 이 성화의 중요성은 크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수도원 안에는 한눈에 보아도 거동이 매우 불편해 보이는 수많은 환자와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또한 신자들은 검은 성모님에 대한 공경의 표시로 성모화가 걸린 제단 주위에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무릎을 꿇은 채 줄 지어 무릎걸음으로 돈다.

이 성화의 특징은 오른쪽 뺨에 난 두 줄의 상처다. 이 상처가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폴란드 국민들은 이 상처를 성모님이 폴란드와 함께 겪은 시련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이 성화는 성 루카 복음사가가 나자렛 성가정의 나무 식탁에 그린 그림이라는 전승이 있다. 하지만 55년 전 성 바오로 은수자회에 입회한 시몬 수사는 “이 그림은 성 루카 복음사가가 그렸느냐 그리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검은 성모화가 폴란드 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 차지하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검은 성모화가 있는 성당 벽면에 치유의 은총을 받은 이들이 버리고 간 목발, 보조기구 등이 걸려 있다.

■ 와기에브니키 하느님의 자비 성지

크라쿠프-와기에브니키에는 ‘하느님의 자비’ 신심의 산실인 자비의 성모 수녀회 수녀원이 있다. 쳉스토호바 다음가는 폴란드의 성지인 이곳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기록하고 전한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1905~1938)가 생활하다 선종했다. 여기에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시성된 성녀의 기념성당과 탑, 수녀원과 옛 성당, 묘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던 때는 마침 오후 3시라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신자들이 함께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이 기도는 매일 폴란드와 이탈리아의 라디오를 통해 중계되고, 금요일에는 크라쿠프 지역 TV, 주일에는 폴란드 국영 TV를 통해 방영된다. 또한, 수녀회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고자 웹사이트(www.faustyna.pl)를 운영하는 한편 현지의 기도와 소식을 온라인으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7개 국어로 이용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도 제작했다.

성녀 기념성당 안에 있는 황금 지구본 모양의 감실은 한국 신자들이 봉헌한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이 기회를 통해 한국 신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꼭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날에도 폴란드 교회는 여전히 뜨거웠다. 주일에 사람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성당이라고 하고 주일미사는 동네 성당에서도 열 대 정도 봉헌된다. 또한 집집마다 거리마다 십자가와 성화, 성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도와 성인들에 대한 공경이 삶 속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 폴란드. 그 모습을 보며 진정한 신앙은 일상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일치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폴란드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