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 / 이승용

이승용(데레사)rn시인
입력일 2019-09-24 수정일 2019-09-25 발행일 2019-09-29 제 316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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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지친 여름을 보내고 나면 입추가 무언지 어김없이 보여주듯 바람의 온도부터가 다르게 느껴지는 백로의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의 경건함을 배우도록 열어주시는 초저녁 하늘의 구름과 석양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저 멀리 밀레의 저녁 종이 들리는 듯한 엄숙함에 주변은 더 고요해지고 평화로운 풍경에 넋을 놓아버립니다. 감사보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힘쓰고 살아온지라 가득 차오른다는 것이 기쁨이기도 하지만 겨울 혹한의 어두운 양면처럼 인생의 달고 쓴 맛을 두루 맛보도록 내게 역사하심도 감사를 통하도록 기다려준 능하심에 놀라울 뿐입니다.

삼 년 전, 집안의 장남인 오라비를 보내고 지난해에는 예고 없이 아버지를 보냈습니다. 오라비는 암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추석을 보낸 후 하늘에 올랐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오라비를 보면서 삶과 죽음 사이는 한 발짝밖에 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고통 중에 마지막 숨을 내뱉는 것이 희망이라면 나무처럼 뽑아주시기를 애원도 했습니다.

오라비의 삶을 잘 아는 터라 측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이어온 가족의 어린 시절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으로, 땅에서는 알코올중독이신 아버지와 싸우며 하느님께 매달리듯 묵주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늦기 전에 화해하여라”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오라비는 화해를 시도했으나 아버지의 전통적 사고로는 어림도 없는 접촉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저희 집에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는 말씀은 제 가족 안에서 일어난 역사였던 것처럼 아버지와 자식들 간의 사이가 안 좋았고 오라비는 가시기 전 부모와 자식 간의 마지막 화해를 시도했지만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고 두 해 뒤인 추석을 지나 아버지도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집안의 두 사람을 같은 시기에 보내고 나니 그야말로 세상을 떠난 연옥영혼을 위한 나의 기도는 더욱 무게가 실리고 추수감사절의 기쁨은 뒤로한 채 고인을 기리는 추모와 애도로 애석함이 깊어지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한가위에 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한 저의 기도와 성가는 슬프고 아름다운 회소곡이 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의로운 아버지께 100일 연도로 속죄하는 아픔을 봉헌하는 동안 두 영혼을 위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리라 신뢰합니다. 회개와 회개가 만나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시지 않을까요. 화해 없이 보낸 이러한 역사를 통해 하느님의 일이 저에게서 드러나도록 이끌어 주시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요?

얼마 전부터 5가지 감사한 일을 찾아 매일매일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두리번거리며 감사한 일을 찾는 눈을 키우다 보면 고통도 빛나고 내 삶의 원동력은 당신과 함께 라는 위대한 습관과 역사하고자 하는 뜻이 드러나겠지요.

“늘 깨어 있어라” 하신 당신만이 세상을 밝혀줄 빛입니다. 이 지구상의 모든 부모와 자녀들을 위해 멀어진 귀와 눈을 열어 주사 하느님을 아는 예지로 서로 존중하며 살도록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어디에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아버지께 간구합니다. 작은 사회인 가정이 건강해지길 성가정의 주인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크게 불러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승용(데레사)rn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