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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본당 봉성체 날에 / 최성민

최성민rn(소화데레사·제1대리구 정자동주교좌본당)
입력일 2019-09-24 수정일 2019-09-25 발행일 2019-09-29 제 316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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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렐루야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사를 해 본당을 옮긴 뒤 처음 참례하는 봉성체 날입니다. 체나콜로 월례미사가 있는 날이라 조금 고민을 해 보지만 지각을 각오하고 첫 참례인지라 지역의 구역장님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처음 걷는 길인데 천변을 따라 길 위에는 밤나무에서 밤송이들도 떨어져 있고 망태버섯도 수줍게 고개 내밀어 가지런히 피어있는 등 맑은 하늘 아래 초가을의 정취가 가득합니다.

처음 가보는 요양원에 들어서니 이미 어르신들께서 한자리에 모여 계십니다. 휠체어에 나란히 앉아 앞줄을 이루시고 앉지 못하시는 분들은 침대에 누워 미사참례를 하십니다.

그런데요. 시작과 동시에 한 할머니께서 제 눈을 사로잡습니다.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 손 자세를 취하셨으나 심하게 떨리는 손을 어찌할 바 모르고 계십니다. 저도 모르게 살짝 할머니 뒤편으로 가까이 자리를 옮깁니다. 요양원 전체 봉사자들 포함해 어르신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부족하지만 겸손되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두와 함께 기도합니다.

봉성체는 신부님의 성경 말씀 봉독과 수녀님의 도움으로 제대도 제대로 갖추어 이루어지는 덕분에 가을 햇살이 들어오는 병실이 일순간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경건하고 따뜻한 시간입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지난 한 달 동안 이 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셨을까요. 이윽고 사제의 거양성체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체를 모시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멘으로 최대한 응답하시고 어르신들을 위해 준비된 작은 컵의 물로 영하신 성체를 최선을 다해 어렵사리 넘기십니다.

작은 컵들을 정리하며 보니 성체를 영하시기 전에도 미사가 진행됨에 따라 손의 떨림이 차차 가라앉으시던 할머니, 물로 힘겹게 넘기시고 난 뒤에는 눈에 띄게 안정된 모습으로 아주 좋아지셨습니다. 미사의 은총이 이렇게 엄청납니다. 알렐루야 아멘입니다.

우리 죄인들의 몸과 마음 영혼의 치유자로 오신 주님이십니다.

절로 고개가 숙어지며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어르신들의 영적 육적 회복을 위해 잔여 기도를 드립니다. 작은 영혼 되어 바치는 겸손의 기도입니다.

어르신들께서 부디 좀 더 힘을 내셔서 눈앞에 죽음을 환히 앞두셨지만, 주님 안에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영위하시며 천상 고향으로 돌아가실 채비를 마치시는 마지막 날, 부디 평안히 주님 품에 안기시길 어머니 성모님의 전구를 청해 봅니다. 아멘.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최성민rn(소화데레사·제1대리구 정자동주교좌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