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마지막 날 / 마해성

마해성(치릴로) 시인
입력일 2019-09-17 수정일 2019-09-18 발행일 2019-09-22 제 316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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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스치고 간 자그마한 정원에 가녀린 햇살 토실토실 자라나는 오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장미 꽃망울들 푸르른 노랫소리 짙어가던 그런 햇살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우리 자원봉사 팀 일행은 도시 외곽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잡은 한 요양원을 찾았습니다.

저는 초보 봉사자로서 일곱 명으로 구성된 기존의 주말 자원봉사 팀에 합류하여 오십여 명의 치매 어르신들이 여생을 보내고 계시는 요양원에 매주 1회씩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곳 어르신들은 때로는 어린아이들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하시는 바람에 진땀 빼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천천히 그 시간들을 들여다보면 그 어르신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저의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아울러 미래의 삶을 예측해 보는 소중한 성찰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작년에 타계하신 우리 어머님과 연세가 같았던 여자 어르신 한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바로 3호실에 계시는 팔십 대 초반 윤씨 어르신이십니다.

어르신은 얼마 전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는데 아주 내성적인 성격으로 하루에 많은 시간을 침상에서 조용히 보냈습니다. 세례를 받은 교우로서 성경책을 읽거나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하루 일과를 신앙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낙엽들이 소슬바람을 타고 요양원 정원에 휘날리던 어느 가을날, 저는 오랜만에 봉사팀원들과 함께 요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요양원 3호실은 유달리 복잡하고 소란스러웠습니다.

윤씨 어르신이 평소와는 달리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 개의 보관함과 비품들을 방안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늘어놓은 채 부지런히 보따리를 싸고 있었습니다.

그 사연인즉, 지난번 대장암 수술 시 집도 의사가 6개월 정도 살 거라는 시한부 예고일이 내일이라서 오늘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며 주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서두르고 계셨습니다.

급기야 경험 많은 봉사자 몇 분이 달려와서 어르신의 손을 부여잡고 얼마간 기도와 성경 말씀을 봉독하여 겨우 진정시켰습니다. 그 사이 어르신이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타지로 이사하게 되어 윤씨 어르신의 상세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껏 부고 소문이 없는 걸 보면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어르신의 간절한 로사리오 기도도 늘어난 생명선만큼 켜켜이 쌓여가고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4)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해성(치릴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