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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역사와 마주하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 청년 순례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9-09-03 수정일 2019-09-04 발행일 2019-09-08 제 316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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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역사의 아픔 뒤에 참 평화 오길
한국 예수살이공동체-일본 ‘브리지’ 주관
경색된 양국 관계에도 용기 낸 청년들
함께 역사 배우며 마음의 벽 허물어

8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을 찾은 한일 청년 순례단이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

“여러분은 하느님의 ‘지금’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64항에서 “젊은이들은 세상의 현재”라며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현재’인 한국과 일본 청년들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한국 예수살이공동체(담당 이정훈 신부)와 일본교회 ‘브리지’(bridge)가 공동 주관한 ‘청년, 역사와 마주하다-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 청년 순례’는 8월 30일~9월 1일 2박3일간 서울시내를 비롯해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의정부교구 구리 토평동성당 등에서 열렸다. ‘브리지’는 아시아와 일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는 역사 공부 모임이다.

“우리 같이 다녀도 괜찮을까?”

순례 첫날 이동 중에 한국 청년들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최근 한일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한국 내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여행 취소 등의 분위기를 의식한 대화였다. 일본에서 온 청년들도 한국에 간다고 하자 주변에서 걱정 어린 시선들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양국 청년들은 서로 벽을 허물고 금세 친구가 됐다. 그들은 SNS 계정을 공유하는 등 허물없이 어울리며 생기 넘치는 얼굴로 평화를 향해 성큼 뛰어들었다. 특히 양국의 정치적 상황을 뛰어 넘어 서로의 역사를 바라보고 공감했다.

첫째 날인 8월 30일 오전 9시 3·1운동의 발상지인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순례는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을 비롯해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민주인권기념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양국 청년들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마주했다.

일본에서 온 청년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야마이시 사쿠타로씨는 “일본과 가까운 나라임에도 한국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 순례를 통해 많이 배웠다”면서 “앞으로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은 오후 7시30분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청년들과 함께 순례한 일본 나고야교구장 마쓰우라 고로 주교는 강론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고로 주교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지만 우리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울 수는 없다”면서 “그들의 목소리는 전 세계 약자들이 당하고 있는 폭력, 차별과 연대한 목소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둘째 날 오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방문했으며 오후에는 의정부교구 토평동성당에서 좌담회를 개최했다. 박예슬(율리아나·25·원주 우산동본당)씨는 “처음에는 일본 청년들과 함께 서울 시내를 걷고 사진 찍는 것이 조심스러웠다”면서 “하지만 함께 역사를 마주보며 마음의 벽이 허물어 졌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평화를 이뤄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일본 삿포로에서 사목하고 있는 한정수 신부(의정부교구)는 “한일 관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청년들과 함께하며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졌다”면서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투신하는 신앙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났던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보고 있는 한일 청년 순례단.

순례에 참가한 일본 청년이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메모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은 한일 청년 순례 참가자가 이순신 장군 동상을 촬영하고 있다.

순례단이 이정윤 신부(의정부교구 지금동본당 주임·맨 오른쪽)의 설명을 들으며 광화문 광장을 둘러보고 있다.

■ 일본 나고야교구장 마쓰우라 고로 주교

“과거의 잘못 반복하는 일본 정부 큰 문제”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미래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일본 나고야교구장 마쓰우라 고로 주교(일본 주교회의 이주민·난민위원회 위원장)는 198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메시지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정권에 따라 갈등 상황이 반복되는 한일 관계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고로 주교는 8월 30일~9월 1일 한국에서 열린 ‘청년, 역사와 마주하다-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 청년 순례’에 참가했다.

그동안 일본의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고로 주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아픔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라면서 “잘못된 걸음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한일 관계가 흔들리고 있지만 우리 교회는 같은 마음으로 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평화를 위한 작은 움직임을 소개했다. 그는 “아베 정권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로 현 정권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면서 “나고야교구에서는 타종교 신자들도 모여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시도하고 있는 평화헌법 9조 개정에 대해 나고야 아이치켄고등학교 학생들이 실시한 모의 투표 사례도 언급했다. 당시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의투표 결과 70% 이상이 전쟁을 금지하고 평화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평화헌법 9조 개정을 원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외면하는 일본군 ‘위안부’ 등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용기 내어 발언해 온 고로 주교는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수님은 힘들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걸어가셨다”며 “우리는 항상 깨어 있으면서 예수님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일 교회가 담화 발표를 통해 함께 하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돼 평화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