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세모 영성체 / 조한금

조한금(가타리나)rn수필가
입력일 2019-09-03 수정일 2019-09-04 발행일 2019-09-08 제 316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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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거실의 하얀 벽면엔 십자고상이 걸려있고 그 아래에는 삼단 장식장이 놓여있다. 그 장식장 맨 위에 올려놓은 자그마한 유백색 달항아리 하나, 그 몸통에는 빨간 십자 표시가 작은 원 안에 들어있고, 그 아래로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친필 휘호가 사인과 함께 쓰여 있다.

“서로 밥이 되어주십시오”라고.

하루에도 수십 번 그 앞을 오가는데 그때마다 그 말씀에서 생명력이 느껴지곤 한다. 서로 밥이 되어주라는 것은 희생과 봉사로 서로를 살리라는 생존의 의무와 함께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서로를 아끼고 위하라는 것일지니, 그건 아무 조건 없는 부모 자식에게서나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좁게는 가정에서부터 넓게는 지구촌의 모든 이들에게 권장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예수님께선 수난 전날 열두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신 다음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늘에 감사를 드린 후 나눠 주신다. 그것은 처음부터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러 세상에 오셨고, 영원히 영혼을 구하는 밥으로 먹히러 오신 본뜻을 비로소 드러내신 것이다.

미사는 그런 예수님을 기리는 제사로서, 사제가 성체를 높이 들어 올리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 되도다”라고 하실 때 나는 그 거양성체를 바라보며 “주님! 당신을 받아 모시고 그 은총 안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해주소서” 하고 입속으로 뇐다.

이어 들어 올린 포도주의 성작을 바라보면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피가 저의 죄를 말끔히 씻어주시리라 믿습니다”라면서 고개를 숙인다. 그 순간 모든 잘못의 원천이 네 탓이 아닌 바로 나로 비롯됨을 깊이 성찰하여 용서받고, 외롭고 힘들었던 상심도 치유 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면 단위의 시골 성당은 주일에도 미사 한 대뿐이다. 그마저도 농번기엔 자리가 성글다. 더구나 평일 미사에는 신자 수가 손꼽을 정도여서 거양성체를 받아 모실 기회도 종종 온다. 어쩌다 세모난 밀떡을 받아 모신 날엔 마치 삼위일체이신 주님을 직접 영접한 듯 감격해서 코허리가 시큰해지며 울컥 눈물이 솟는다.

평소에도 영성체를 모시고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하찮은 나를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해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알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는데, 하물며 사제가 쪼개어 드시고 남은 거양성체의 ‘세모 영성체’를 모신 날은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마저 느끼는 것이다.

신자라면 누구나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은 십계명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의무다. 그런데 하지 말라는 금기보다 하라고 이르신 말씀의 실천이 더 어렵다. 가장 미소한 자에게 베풀라고,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못한 마음은 늘 체한 듯 얹혀있다.

예수님 식탁에 앉아 예수님을 밥으로 먹은 지 어언 60년, 그런데도 서로 밥이 되라 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에도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설은 내 밥은 언제쯤 먹힐 밥으로 뜸 들어있을꼬. 하느님은 그런 나도 한없이 사랑하시니 그 뒷배가 마냥 든든하기만 하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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