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르포 /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생명의 집’을 가다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9-09-03 수정일 2019-09-03 발행일 2019-09-08 제 3161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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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위험 처한 아기와 임산부들 보금자리
막다른 길 내몰린 미혼모들
조건 없이 받아들여 보호하며 복지 사각지대 임산부들 도와
출산 후 임시보호·자립 지원도

생명의 집 전경. 복지 사각지대에서 출산 여건이 어려운 산모들을 돕고 낙태 위험에 처한 아기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왔다. 최근 용인시 상하동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운영하는 생명의 집(원장 김소영 수녀)은 1991년 설립돼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에서 출산 여건이 어려운 산모들을 돕고 낙태 위험에 처한 아기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왔다. 아울러 미혼모들의 ‘친정’이 되어 그들이 살면서 부딪혀야 하는 여러 아픔을 보살펴왔다. 이곳을 통해 그간 1000여 명의 태아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지난 8월 27일 용인시 상하동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생명의 집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그 생명 지킴이의 현장을 찾아가 봤다.

“아는 이 없는 한국에서 임신했는데 수녀님들이 계셔서 무사하게 아이를 낳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 이예요.”

25살의 베트남 출신 A씨는 한국어를 배우러 유학 왔다가 한 남성을 알게 됐고 지난 6월 21일 쌍둥이를 낳았다. 임신한 상태에서 B교구 이주사목센터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사제의 소개로 생명의 집에 왔다. 쌍둥이 중 한 명을 안은 채로 기자를 만난 그는 “내년 1월까지 생명의 집에 있다가 2월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수녀님들이 잘 돌봐줘 정말 감사하다”고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생명의 집은 낙태의 위험에 처한 미혼모와 임산부들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 보호한다. 출산의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산모는 안전하게 출산하도록 도와주고, 아이를 낳은 이후 미혼모들이 세상의 편견과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협조자를 자처한다.

A씨처럼 외국 국적자로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임신한 여성, 이혼당한 다문화 가정 산모 등 미혼모 지원정책에서 배제되는 산모들에게도 열린 곳이다.

이런 법적으로 보호받기 쉽지 않은, 갈 곳 없이 막다른 길에 내몰린 미혼모들을 품기 위해 생명의 집은 보조금 없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는 시설이기도 하다.

생명의 집 김소영 원장 수녀와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새로 이전한 건물의 엄마들과 아이들 공간은 여느 가정집 거실 분위기였다. 이사하기 전에는 엄마들이 2인 1실에서 생활했으나 여기서는 아이와 엄마가 독립된 방을 가질 수 있어 좀 더 안정되고 쾌적한 환경이 됐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한다.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1366 여성 긴급전화 혹은 관내 사회복지팀 소개를 받아 찾아온다. 병원에서 연락해 와 연이 닿는 경우도 있다. 신자일 확률은 10~20% 정도다.

초기 상담을 하며 ‘아이를 낳기로 한 이유’를 물으면 60% 정도는 ‘낙태 시기를 놓쳐서’라는 답이 되돌아온다. 나머지 40%가 ‘생명을 죽이는 것은 죄’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 생명의 집에 머물며 출산을 기다리는 20대 중반의 C씨는 임신 사실을 알고 집에서 낙태를 종용하자 가출해서 찾아온 경우다. 아이가 짐스러워 그저 “빨리 낳고 가버리자”는 심정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배경과 이유로 생명의 집을 찾지만,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생명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깨알 같은’양심으로 모성을 변화시킨다. 출산 후 실제 입양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30~40%에 그친다.

2년 전 입소한 한 여성은 무뇌수두증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다. 이전에도 두 명을 출산한 경험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모두 입양을 시켰다. 이 아이는 입양이 안 되니 직접 키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버거워하고 양육을 힘들어했다. 그러다 몇 달을 품에 안고 재우는 과정 안에서 서서히 변화됐다. 결국 8개월여 만에 세상을 떠난 아이는 엄마를 바꿔놓았다. 술·담배도 끊고 지금은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전문 ‘베이커’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저 막 살아갈 수도 있었던 삶에 아이는 정말 선물이 됐다.

생명의 집은 미혼모들의 출산 이후에도 임시 보호 및 주거 제공 등의 활동을 펼치며 이들이 책임감 있게 살아가도록 지원해준다. 양육을 원할 때는 공동생활 가정에 의뢰해서 자립을 준비하도록 지원하고, 생명의 집에서 바로 자립할 경우 필요 물품을 지원한다. 퇴소자들이 살면서 힘이 필요할 때도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여러 여건 때문에 새 건물로 이사를 왔지만, 규모가 커진 만큼 운영 부담도 늘어났다. 공과금부터 3~4배로 금액이 올라갔다. 후원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집은 “자신의 삶을 잃은 채 방황하는 여성들과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나약한 생명이 환경으로부터 위협받지 않도록 후원과 자원봉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문의 031-334-7168 생명의 집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