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핼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열(熱)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9-08-27 수정일 2019-08-27 발행일 2019-09-01 제 316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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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의 어느 주일, 양어깨가 돌을 올려놓은 듯 짓눌리면서 욱신욱신 쑤셨습니다. ‘자고나면 괜찮겠지’라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계산 착오였습니다. 진통제라도 먹었어야 했었지요. 밤새 온 몸에서 열이 나고 등에서는 진땀이 나면서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침대 전체를 헤매다 아침을 맞이했죠. 빨리 병원에 가야하는데 왜 시간은 이리 더디 갈까요.

병원에 가니 의사는 가장 먼저 체온을 측정했습니다. 체온을 통해서 몸의 이상 여부를 판단하려는 것이겠죠. 몸에 열은 왜 날까요. 바이러스나 병원균 등이 침투해서 신체에 이상이 생기면 자정 기능이 스스로 작동한다고 합니다. 몸의 체온을 올려 병원균과 싸우기도 하고 신체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감지기 역할도 합니다. 체온이 1도만 증감해도 건강에는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체온이 곧 건강을 가늠하는 척도인 것이죠.

항공기에도 우리 몸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온도 계기가 여럿 있습니다. 항공기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같은 중요부분에는 어김없이 열을 감지하는 계기가 장착돼 있습니다. 온도 변화를 측정해서 기관의 정상작동 여부를 체크합니다. 엔진의 온도가 일정범위를 벗어났다면 엔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너무 열이 많이 나는 것도 문제지만 기준 이하로 내려가는 것도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합니다.

신앙생활도 종종 온도로 대변되곤 합니다. 성당에서 세례는 받았지만 신앙생활을 멈추고 있는 신자들을 냉담교우(冷淡交友)라고 부릅니다. 냉담이란 ‘어떤 대상에 흥미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신앙의 동면 상태에 들어갔다고나 할까요. 몸과 항공기 엔진에 이상이 생기면 온도가 변하듯이 신앙에도 이상이 생기면 신앙의 열정이 싸늘하게 식어간다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세례를 받은 이후 냉담을 한 적은 없지만, 악마의 유혹을 받은 적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은근한 회유와 겁박을 받았습니다. ‘상급자와 같은 종교를 가졌다면 좀 더 편하게 근무할 텐데, 진급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개종은 하지 않더라도 성당에 나가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부끄러운 고민을 했었지요. 그리고 진급 또는 근무평가의 불이익을 염려해 냉담하거나 심지어는 개종하는 동료들을 안타깝게 지켜본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신체의 체온이 떨어지면 죽을 수 있는 것처럼 냉담은 신앙의 사망선고입니다. 우리 몸에 나쁜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스스로 체온을 높여 바이러스를 퇴치하듯이, 뜨거운 신앙의 열정은 내외적으로 몰려드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방어막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동면 중이십니까? 화창한 봄을 맞이하러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십시오. 집 나간 탕아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하느님은 오늘도 냉담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의 차디찬 몸을 녹여주실 겁니다.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