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신앙선조 흔적 찾아 문화재 탐방] (5) 고초골공소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rn사진 박원희 기자
입력일 2019-08-27 수정일 2019-08-27 발행일 2019-09-01 제 316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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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시대 교우촌의 믿음 고스란히 이어져
교구 내 가장 오래된 한옥공소
천주교 정착 흔적 볼 수 있어
1820년경부터 신자들 모여들어
신앙생활 나눌 공간 직접 지어
최덕기 주교, 공소 활성화 힘써

고초골공소는 근대기 천주교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그 기능을 담아내기 위해 한옥이 변모해 가는 흔적을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고초골공소 내부.

■ 한옥 경당

경기 용인시 처인구 고초골로 15에 소재한 제2대리구 원삼본당(주임 이철민 신부) 고초골공소는 교구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한옥 공소로 꼽힌다.

큰 길에서 멀지 않음에도 ‘枯草天主敎會’(고초천주교회) 팻말이 걸린 공소 경당은 전형적인 주변 농촌 환경과 어우러지며 깊은 산속에 들어선 듯 고즈넉한 풍경을 안긴다.

경당은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는 상량묵서(上梁墨書)에 신묘년이란 기록이 있고, 프랑스 선교사들의 공식적인 선교가 허용됐던 1866년 조불수호조약 시기를 고려할 때 1891년(신묘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량묵서에는 ‘辛卯 三月 十六日 立柱上樑’ (3월 16일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었다)고 돼 있다.

124㎡ 규모의 이 경당은 지난해 3월 9일 ‘문화재보호법’ 제53조에 따라 국가 등록문화재 제708호로 등록됐다. “수원교구 내 현존하는 한옥 공소로서 역사가 오래되고 지역적 상황을 잘 담아내고 있으며 근대기 천주교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그 기능을 담아내기 위해 한옥이 변모해 가는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평가다.

공소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과거 용인 지역 살림집 형태와 근대 한옥이 변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또 용인 지역 상황을 잘 반영하는 건축물로서 건물구조와 평면형식 등 건물 본래의 모습도 올바로 간직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매일 미사가 봉헌되며 여전히 공소의 기능을 이어가고 있는 점도 가치로 부각됐다.

■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선

2016년 6월 21일 고초골에 입주한 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는 공소와 연을 맺으며 고초골 지역 교우촌 형성 시기 및 출신 순교자에 대한 내용을 문헌 조사로 밝히고 교회사적 가치를 알렸다.

공소는 정확한 형성 연도가 알려지지 않지만 1820년경부터 신자들이 모여 교우촌을 이뤘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한양과 해미에서 온 포졸들에 의해 신자들이 잡혀가고 마을은 불에 타 초토화됐다.

당시 많은 신자가 순교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에서는 5명의 이름이 나온다. 「병인치명사적」에 따르면 병인박해 시기에 신 안드레아와 박 바르바라가 이 지역에 거주하다 체포돼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한 기록이 있다. 유군심 치릴로 및 그의 아내, 제수(弟嫂)는 고초골 출신으로 해미에서 순교했음이 드러난다.

이후 고초골은 거의 역사가 단절된 지역이 됐으나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 이후 다시 신자들이 모여들었고 공소가 세워졌다. 어떤 이들이 어떤 연유로 고초골을 찾았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초골을 찾아온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나눌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조 때 무신(武臣) 이주국 장군 소유 건물 중 잠실(蠶室)을 뜯어 옮겨와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신자들은 교리를 배우고 모여서 기도했다.

병인박해 이후 공식 기록에 처음 언급된 것은 1900년이다. 당시 공소는 미리내본당 관할이었고 신자 수는 78명으로 드러난다.

1902년 11월 14일 서울남부지역 사목순방 내용을 적은 「뮈텔주교일기」에서도 공소가 언급된다. 여기서 뮈텔 주교는 “마지막 산을 넘기 전에 고초골공소에서 잠시 멈추었다. 여기에서 교우들로부터 국수를 대접받았다. 이 마을 근처에 외교인들이 운영하는 큰 도자기 공장이 있었다. 산을 넘으니 미리내였다”고 썼다.

‘공소 회장’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최덕기 주교는 공소를 두고 “세월을 이어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했다.

“박해시대 교우촌, 공소, 피정의 집으로 시대에 따라 얼굴을 달리 볼 수 있는 장소이지만 그 시대마다 하느님 안에서 믿는 마음은 같은 모습으로 흘렀다”고 말한 최 주교는 “박해시대 교우촌에서부터 시작된 신앙 선조들의 신앙심과 순교 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 주교는 매일 오전 6시30분 미사를 봉헌하고 ‘최덕기 주교와 함께하는 월례피정’ 지도 등 2003년 건립된 공소 내 ‘고초골 피정의 집’ 피정 지도를 하고 있다.

2016년 10월 결성된 고초골 발전위원회와 함께 최 주교는 피정의 집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오는 9월 7일에는 피정의 집 교육관 축복식이 거행된다. 이로써 피정자들이 더욱 나은 여건에서 강의를 듣고 피정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 전망이다.

※문의 031-337-0470 고초골공소 사무실

고초골공소 종탑.

최덕기 주교가 고초골공소를 안내하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rn사진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