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태아들… 그 생명 앗아간 이들의 회개를 청합니다” 꽃동네 태아동산에서 봉헌 지난 4월 헌재 결정 이후에도 생명 수호 다짐 굳건히 이어와 낙태로 죽어간 태아들 기억하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회개와 속죄의 기도 바쳐
충북 음성 꽃동네, 안으로 깊숙이 더 들어가 사랑의연수원 옆 자그마한 동산에 마련된 4000기의 하얀 십자가들. 단 하루 동안 무자비하게 살해되는 4000여 명의 태아들을 기억하며 참 생명이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곳이다. 미처 빛을 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 아기들의 영혼은 순백색의 자그마한 십자가 형상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을 저민다.
8월 16일 오후 4시, 청주교구 가정사목국(국장 정효준 신부)이 주관하는 ‘낙태종식을 위한 생명 수호 미사’가 태아동산에서 봉헌됐다.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300여 명이 참례한 이날 미사는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참담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죄한 이들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우리의 다짐을 계속 이어가는 뜻깊은 자리였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곁의 가장 작은 이들을 만나기 위해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았다. 뚜껑이 없는 작은 승용차를 이용해 희망의집을 찾아 장애인들을 만난 교황은 참으로 가장 작은 이들, 자신을 지킬 아무런 수단도 없이 희생된 태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태아동산을 찾았다. 그리고 교황은 아무 말도 없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침묵 속에 기도를 바쳤다. 무슨 말을 교황은,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8월 16일 ‘낙태종식을 위한 생명 수호 미사’에 함께한 이들은 태아동산 앞에서 더는 침묵을 지킬 뜻이 없어 보였다. 오웅진 신부(재단법인 예수의꽃동네유지재단 이사장)의 선창에 이어, 모든 참석자들은 크고 우렁차고 절박한 목소리로 생명을 위한 묵주기도를 바쳤다.이날 미사에 참석한 이들은 이미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인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공감했다. 고통의 신비 5단에서 참석자들은 생명을 거스르는 모든 범죄, 그 탓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돌려, 우리 각자가 그 모든 책임을 함께 지고 온 마음으로부터 회개하고 속죄하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다.
이숙경(로사·57)씨는 “자주는 아니지만 평소에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신자들끼리 나누곤 한다”며 “낙태를 법적으로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죄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숙희(데레사·54)씨 역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에 대해 크게 안타까워하면서 “우리 신자들부터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감사하게 여기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가톨릭신문이 주관하는 ‘낙태종식을 위한 기도봉헌’ 운동을 교회 언론의 바람직한 활동 중 하나라며 기도문 상본에 큰 관심을 보였다. 청주교구는 가정사목국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반생명적인 풍토에 맞서기 위한 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효준 신부는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이미 매월 셋째 주 월요일마다 생명 수호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며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생명 수호 미사가 당장 어떤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생명을 지키는 중대한 소명을 위한 소박하지만 큰 걸음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태아동산에서 침묵 중에 생명을 위해 기도를 바친 프란치스코 교황, 마찬가지로 태아동산의 4000개 십자가 앞에 선 이들은 그 무죄한 영혼들에게 침묵으로 속죄와 용서의 기도를 바친다. 하지만 인간 생명에 대한 억압과 박해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는 오늘날 사회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도와 함께하는 우리 삶의 구체적인 생명 실천의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세상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에 맞서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은총을 수호할 수 있게 될 것임을 이날 참석자들은 공감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