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담화 의미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9-08-20 수정일 2019-08-20 발행일 2019-08-25 제 315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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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 원인과 해결책 균형있게 제시
“지극히 적대적인 처사”
식민지 지배 책임 외면 비판
독일 사례 들며 일본에 일침

2014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20회 한일주교교류모임 당시 일본 주교 10명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위로를 건넸다.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이하 일본 정평협) 회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삿포로교구장)가 8월 15일 발표한 ‘한일 정부 관계의 화해를 향한 담화’는 한일 갈등의 원인과 책임소재, 해결 방안을 균형 있고 냉철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촉발된 한일 갈등은 이전과는 양상이 다르다. 경제분야뿐만 아니라 군사분야에서도 충돌하고 있는데다 국내에서는 일본물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며 반일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평협이 담화를 발표한 날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는 광복 74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강경하면서도 화해 가능성을 열어 둔 발언을 했다.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 온 국민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면서도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한일 갈등 상황을 대하는 우리 정부 입장을 집약해서 보여줬다.

일본 정평협 담화는 한일 갈등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정부의 입장과 연결할 때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우선 일본 정평협 담화는 한국 대법원 판결 후 일본 정부가 한국에 취한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한국에서 보면 지극히 적대적인 처사이며 앞으로 양국 정부의 관계 악화가 장기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에서 보면’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일본교회가 한일 갈등 상황에 대해 우리 정부 입장에 공감하고 일본 정부가 원인 제공을 했음을 인정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담화의 다음 부분을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일본 정평협은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약을 근거로 배상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 입장을 소개하면서 일본 변호사들이나 학자들이 “일본 정부의 대응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과거 강제징용된 노동자들은 ‘개인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한국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직결된 비인도적 행위에 의한 인권침해로 인정하고 일본기업에 위자료를 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본 정평협 담화가 한일 갈등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확실히 짚고 있는 부분이다.

담화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이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약을 맺으면서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 책임을 일관되게 부인한 사실을 현재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일본은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책임이 완전히 소멸했다고 주장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중국인 강제 연행과 노동이 문제가 된 카시마 건설 하나오카 사건(2000년), 니시마츠 건설 사건(2009년), 미츠비시 메트 리얼 사건(2016년) 등의 경우 소송을 계기로 일본 기업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기금을 설립해 피해자 전원 구제를 꾀한 적이 있다. 일본 정평협은 나치 독일로부터 강제노역 피해를 입은 약 100개국 166만 명 이상에게 독일 정부와 6400여 독일 기업이 2000년 ‘기억과 책임, 미래’ 기금을 창설하고 배상금 약 44억 유로를 지불한 사례를 언급하며 “지금 일본 정부와 기업이 본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 한일관계와 관련한 양국 교회 활동 발자취

▲ 1974년 7월 23일–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당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를 주장하는 양심선언을 발표한 후 구속되자 일본 가톨릭 정의와평화협의회가 성명서를 발표

▲ 1986년– 일본 주교협의회 회장 시라야나기 세이치 대주교, 일본 전쟁 책임을 고백한 후 일본교회의 과거사를 성찰하는 등 일제 강점기에 대한 교회 내 최초의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

▲ 1996년 2월 16일– 한국과 일본 주교 5명이 일본 가톨릭회관에서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첫 모임 가짐

▲ 1996년 8월– 일본 여자수도자장상연합회 한국 방문해 한국과 일본 교회 수도자들 첫 공식 만남

▲ 2010년 6월– 일본 주교회의 정평협, 한일합병 100주년 맞아 안중근과 징용자 발자취 순례, 같은 해 8월 일본 주교회의 의장 이케나가 준 대주교 평화주간(일본교회 8월 6~15일)을 맞아 ‘한일합병’에 대해 언급하며 자국이 행했던 일을 되돌아보자고 당부

▲ 2014년 11월 10일– 일본 주교 10명,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게 사죄, 위로

▲ 2019년 3월 1일–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 3·1운동 100주년 담화 발표

▲ 2019년 8월 15일–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 ‘한일정부관계의 화해를 향한 가톨릭정폅협 회장 담화’ 발표

2013년 2월 제주에서 열린 제19회 한일청년교류모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