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일본교회, 한일 관계 화해를 위한 담화 발표

입력일 2019-08-14 수정일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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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장 카츠야 타이치 주교가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한일정부관계의 화해를 향한 가톨릭 정평협 회장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는 일본국민을 위해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색 원인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복음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담화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한일 정치 지도들은 긴장을 높일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과거를 마주 하고, 미해결인 채 두어 온 여러가지 문제들을 당사자의 입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한다. 담화는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평화의 기도를 소개하며, 이번 일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다음은 담화 전문.

<한일정부관계의 화해를 향한 가톨릭 정평협 회장 담화>

일본과 한국 정부 간의 관계가 긴박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들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화해를 위해 봉사할 과제를 저희에게 주셨습니다”(2코린 5,18)라는 말을 위탁받은 교회로서 우리가 소중한 이웃인 한국과의 사이에서 어떻게 화해와 평화가 깊어지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시다.

-징용공 배상 판결을 둘러싼 한일 정부 갈등

2019년 7월 4일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반도체 등의 소재 수출 절차를 번잡하는 조치를, 이어서 8월 2일에는 일본으로부터 수출 관리상의 혜택을 얻을 수 있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 조치는 한국에서 보면 지극히 적대적인 처사이며 앞으로 양국 정부의 관계 악화가 장기화될 것이라고도 예상됩니다.

이러한 강경 조치의 계기가 된 것은 2018년 10월 이후 선고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일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은 징용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피해에 대한 위자료 지불(배상)을 일본기업에 명한 것이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서 일본정부는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것이고, 이 사법적 판단에 대해 한국정부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한국정부의 무작위) 국제법과 국제협약의 원칙에 위반되며 언어도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변호사나 학자들로부터도,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이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삼권분립 하에 있으므로 행정부가 사법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것이 당연하며 한국정부에 이 판결에 대한 어떤 대응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또 한일정부 및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에서 국가 간의 청구권은 소멸했어도 전쟁피해배상에 관련된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일치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과거 강제징용된 징용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에 대한 개인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그것을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직결된 비인도적 행위에 의한 인권침해로 인정하고, 그들을 직접 고용하고 일을 시킨 일본기업에 그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불하도록) 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일 간엔 사람과 물류교류가 압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8년 한일의 수출입 합계는 9조3430억 엔으로, 한국은 일본에 있어서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 무역 상대국이며, 양국 사이엔 매년 1000만 명의 인파가 오가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에게 일본은 여행지로서도 인기가 아주 많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드라마, 음식물이나 화장품 등을 포함하는 교류의 장이 젊은 세대에까지 넓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한일 가톨릭교회 주교단도 20년 이상 상호 방문하고 있으며, 양쪽 교회 사이에서는 각종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정부의 수출 규제로 인해 한국에서는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에서도 ‘종군위안부’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공립미술관 전시가 수장에 의해 명백한 혐오감 표명을 계기로 해서 중단되는 사태로 몰리고, 각종 교류행사가 중단되는 등 시민들 차원까지 균열이 파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많은 매스미디어는 정부의 말을 크게 전하지만 한국의 주장에 대해서는 무시하기 일쑤여서 그 결과 일본사회 일반의 시각은 한국정부 비판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리를 식별하려면 교류와 선을 촉진하는 것과 그 반대로 고립과 분열과 적대를 가져다주는 것을 가려내야 합니다”라고 깨우쳐 주셨듯이, 우리는 선동에 현혹되지 않고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눈을 떠야 합니다.

-한일기본조약·한일청구권협정과 식민지 지배 책임

우리는 현재의 일본과 한국간의 긴장이 심층적으로는 일본의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그 청산과정에서 해결되지 않고 남겨진 문제에 원인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의 핵심은 1965년 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식민지지배 역사에 대한 가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자세와 이에 분노하는 피해국·한국인들 마음과의 사이 벌어진 틈에 있습니다.

한일 복수의 전문가에 따르면 협정 본문과 체결까지의 협상 과정으로 판단할 때 한일청구권 협정이 대상으로 한 것은, 통상의 합법적인 계약에 근거한 채권·채무관계뿐이며, 거기에 식민지 지배에 의거해서 징용한 때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배상 청구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청구권협정은 냉전체제 아래에서 한미일의 전략적 구상에 밀려 급하게 체결되었습니다. 일본정부는 그 협상과정에서 일관되게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부정했습니다. 일본정부에 따르면 청구권 협정서에 결정된 일본 측 3억 달러 상당의 현물공여 및 2억 달러의 유이자 차관에는 과거를 배상하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경제협력이라고 했습니다. 기본조약도 양국 간 역사인식의 근본적 대립을 알면서도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문구가 삽입됨으로써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는 보류되었습니다. 양국 관계의 중심에 박혀있는 가시인 식민지 지배의 책임에 관한 애초 합의가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들어있지 않은 것, 이것이 한일관계 교착의 근원인 것입니다.

일본정부에 의한 수출규제 문제에 대해, 한국국민 사이에서 일본제품의 불매·불매운동이 퍼지는 것의 배경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100년 이상 전부터 일본이 간계와 강박으로 조선을 침략했는데, 그 수법이 지금도 같다고 분노해서 그것이 불매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정치가 어떻든 간에, 일본과 한국이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니 정치가 독주해서 사람들의 우호관계를 손상시키게 되어선 안 됩니다. 양국 정부는 상대를 ‘비우호국’으로 간주해 국민들 사이에 위협과 증오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자국 정치의 동력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 과거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를 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에 대해서 일본정부의 특히 신중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문제해결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기초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대화하는 것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화해를 향하여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초월법’으로 제창하였듯이 국가 간의 분쟁은 두 당사국은 양국이 바라는 바가 함께 이루어짐과 동시에 양측이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냄으로써 갈등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한일 양국정부가 함께 지혜를 짜내서 막혀있는 이항대립(二項対立)의 악순환을 벗어나 망가진 관계를 복원해 갈 길을 찾는 것이 요구됩니다.

‘기본조약’이나 ‘청구권협정’에 집착해서, 해석의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면, 한일 간의 진정한 우호관계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 명확한 ‘식민지지배의 청산’을 포함하는 새로운 법적인 장치를 만드는 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또한 특히 일본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이웃나라나 그 국민에 대한 역사수정주의, 헤이트스피치 등의 풍조를 진지하게 시정하여, 정확한 역사인식과 반성 위에서 평화롭고 공정한 국제관계를 구축하는 인류사회의 발걸음에 차세대 사람들에게 길이 되어야 합니다.

징용공 재판 원고인 연로한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한일관계의 험악화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은 피해자 개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서로 미워하고 분열하는 우리들 인간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밝히고 마음의 무장해제를 이루게 하시어 상처를 치유하고 인류 통일과 항구적 평화를 위한 내적 기초를 쌓아 주는 분”이십니다. 한일 정치 지도자들은 긴장을 높일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과거를 마주 하고, 미해결인 채 두어 온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시도가 결실을 맺어 일본과 한국, 일본과 조선반도의 신뢰와 우호관계가 발전하고, 그것이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실현으로 이어지도록 평화기간인 지금, 교황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에 따라 제시하신 다음 기도를 마음에 담아 평화의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를 당신 평화 도구로 써 주소서.

친교를 쌓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에 숨어있는 악을 깨닫게 하시고,

저희의 판단에서 독을 제거하고

형제자매로서 다른 이들의 일들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신은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오니

저희들의 말이 이 세상 선함의 씨앗이 되게 하소서.

소음이 있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고

혼란이 있는 곳에서, 조화를 촉진하고,

애매함에는 명확함을,

배척에는 함께 나눔을,

선정적 흐름에는 냉정함을 가져오는 이 되게 하소서.

깊이가 없는 곳에, 진정한 질문을 하고,

선입견이 있는 곳에, 신뢰를 불러일으키며,

적의가 있는 곳에 경의를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가져올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일본 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장 카츠야 타이치 주교

2019년 8월 15일(성모 승천 대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