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97) 참 좋은 가이드!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8-06 수정일 2019-08-06 발행일 2019-08-11 제 315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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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본 나가사키 순례를 떠날 때 일입니다. 시간 계획에 따라, 함께 순례가는 분들과 오전 8시에 인천 국제공항 출국장 E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7시부터 오신 분들도 있었고 거의 대부분은 이미 와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시간이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다 된 터라 이미 오신 분들의 수속을 마친 후 출국 심사장 안으로 들여보냈고, 가이드 분과 나는 약속 장소에 남아 기다렸습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고 기다리는데, 가이드 분은 태연하게 미소만 짓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무음으로 해 놓은 내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가 두 번이나 찍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받으시는 분이 말하기를 ‘핸드폰을 잃어버린 분이 자신의 핸드폰을 빌려서 전화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빌린 분의 인상착의를 물었더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분이 맞았습니다. 그 순간, ‘아…, 오기는 오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 분은 집에서 나와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가는 버스에서 핸드폰을 놓고 내린 것입니다. 다행히도 버스에서 핸드폰을 주운 분이 분실물 센터에 신고를 했고, 그 분 역시 뒤늦게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실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다급한 마음에 어딘지 모르는 곳에 내려, 지나가는 분의 핸드폰을 빌려서, 114 번호 안내 서비스에 수도원 번호를 문의해 전화를 했고, 수도원을 통해 나의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상황을 가이드 분에게 알렸더니, 그 분은 해맑게 웃으며 ‘그럼 됐어요! 제가 최대한 기다려서 모시고 갈게요!’라고 하셨습니다. 20분 즈음 더 흘렀을까,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분이 또다시 다른 분의 핸드폰을 빌려 전화 걸어 말하기를 ‘김포공항인 줄 알고 잘못 내렸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예전에 김포공항에서 일본을 간 경험이 있었던 모양인지! 그때 가이드 분은 편안한 목소리로 그 분과 통화하기를, ‘늦지 않았으니, 인천 국제공항으로 오신 후 약속 장소에서 만나요. 기다릴 테니 편안히 오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가이드 분은 내게 말하기를,

“신부님, 이제 다 해결되었네요. 제가 여기서 기다렸다가 출국 수속을 할게요.”

나는 온화한 모습의 가이드에게 말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얼굴에 편안한 미소를 지으니!”

사실 나는 불안 초조한 표정으로 온갖 걱정을 다 하고 있었는데, 가이드 분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는 듯 태연하게 있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인천 국제공항으로 당연히 오셔야 할 분이 김포공항에 잘못 내린 상황을 생각하니, 애간장이 탔는데! 내 모습을 보고 가이드 분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채, 공항으로 오는 그 분 심정이 어쩌겠어요! 그리고 그 분이 오신다고 하니 좋잖아요. 무슨 일이 터진다 해도, 해결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사실 저는 걱정인 것이, 순례를 떠나려는 그 분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거예요. 핸드폰이야 찾을 수 있다지만, 순례 동안 자기가 찍고 싶은 사진도 못 찍어서 얼마나 서운해하실까, 저는 그 분의 그 마음이 안쓰러울 뿐이에요.”

여행 중에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침착한 모습으로 미소 또한 잃지 않는 가이드의 모습을 보면서, 좋은 가이드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란 발생한 문제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사람을 배려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분 같습니다. 문득 우리 인생의 참 좋은 가이드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