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없었던 한일의 역사… 진정한 화해 위한 노력 필요하다” 광복 후에도 물리력 행사한 일본 ‘미군정’이라는 이름으로 무장 유지 친일잔재 남고 역사적 정리 실패 보상 우선시된 한일관계 청산으로 가해자·피해자 모두 치유 못 받아 역사적 진실 찾아야 화해 이뤄져
오는 8월 15일은 74주년 광복절이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광복의 기쁨과 의미를 되새기는 광복절이어야 하지만 올해는 국내외 상황이 사뭇 다르다. 우리 대법원이 일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자 일본은 우리나라에 경제 보복을 가하고 급기야 8월 2일에는 수출 우대조치 부여 국가목록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결정까지 내렸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일관계의 향방을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제강점의 역사와 과거사 청산 문제를 다시금 돌아보면서 우리가 참다운 ‘광복’(光復)을 맞이했는지 살펴보고 교회적 시각에서 한일관계 해법을 찾는 기고를 싣는다. ■ 해방 후에도 끝나지 않은 일제의 무장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일본 천황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흘렀지만, 우리 민족이 그대로 독립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다는 얄타회담의 결정대로 미국과 소련이 각각 한반도에 진주한 것이다. 하지(John R. Hodge) 중장의 미 24군단은 9월 8일에야 인천에 상륙할 수 있었는데, 이튿날 서울에 들어온 미군은 조선총독부에 걸려 있던 일장기를 내렸고 대신 성조기를 게양했다. 그런데 미군의 한반도 진입이 늦어지면서 남한 지역의 일본군은 상당 기간 무장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 이후, 그리고 미군이 상륙한 다음에도, 실제로 일본군과 일본 경찰은 한국인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미군 상륙을 환영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행진을 향해 발포하기도 했는데, 당시 일본 경찰들은 일본인들의 재산을 지키고 있었고, 일본 군대는 ‘미군정’이라는 완장을 차고 거리를 활보했으며, ‘미군이 재가한 일본군 파견대’라고 쓴 트럭 역시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미군 지도부는 군정 초기,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를 유임시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군정을 시작하는 24군단 1만여 명의 병사 가운데는 당연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인원이 없었는데, 미군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 총독부의 조직과 실무 인원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당시 미군 지도부는 한국인의 정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따라서 이 시기 하지 사령관 명의로 발표된 포고문들을 보면, “주민들이 경솔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한다면 의미 없이 인명을 잃고 아름다운 국토도 황폐돼 재건이 지체될 것입니다”라고 경고하는 등 남한 주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표현이 자주 발견된다. 일제의 패망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던 한국인들에게 미군정의 조치들은 큰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일본인 고위 관리들까지 유임되는 양상이 전개되자 남한 각지에서는 미군정의 통치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다. 결국 한국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고 나서야 미군정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하지 사령관은 9월 29일자 포고문에서 ‘아베 총독 및 각 국장이 파면됐고 미군정 하에서 서울 중앙정부가 개조(改組)됐다는 것’ 등 일본인 관리에 대한 처리 문제를 우선적으로 언급한다. 또한 ‘경기도는 현재 미군정 하에 있으며 일본인 경찰관이 차차 파면되고 그 대신 조선인 경찰관이 배치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치적으로 내세웠다. 미군정의 통치 조직에 대한 초기의 방향을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한 주민들에게 “만사를 참고 또 참아라, 현상에 있어서 조선의 장래를 위해 제군이 할 수 있는 최대 공헌은 어디까지든지 만사를 참는 일일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당부’하는 모습을 볼 때, 한국인에 대한 미군정의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1965년 한일협정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한일관계 속에서 올해 광복절은 우리 국민들에게 그 의미가 더욱 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참회가 없었던 ‘화해’,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했던 한일의 역사가 새로운 대립의 상황을 가져온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동아시아 역사 안에서의 정의와 반성의 문제는 우리 인류가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아직 화해하지 못한 동아시아에서 우리 교회가 이 땅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더 간절히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빛의 자녀인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가 드러나는 평화, 참회와 속죄가 이뤄지는 화해를 소망하면서 함께 기도하자.강주석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rn그동안 가톨릭동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