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신앙선조 흔적 찾아 문화재 탐방] (2) 수원성지(수원화성)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19-08-06 수정일 2019-08-06 발행일 2019-08-11 제 315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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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피와 얼이 서린 역사 현장
19곳에 순교터 발견된 화성 무명순교자 2000여 명 넘어
성당 포함 수원성지로 선포
다산 정약용 설계로 지어져 천주교 상징물 곳곳에 위치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라는 뜻의 화홍문(북수문)에는 7개의 수문으로 수원천이 흐르는데, 7개의 수문은 칠성사, 성령칠은 등 천주교를 상징하는 숫자 7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에 숨겨진 이야기

작은 정원처럼 꾸며진 수원성지(북수동성당) 십자가의 길. 2000여 종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는 이곳은 생기있는 기운들이 순례자들의 기도와 묵상을 돕는다. 십자가의 길 끝에 아름드리 자라고 있는 미루나무는 수원성지의 역사를 상징한다. 순례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이 나무는 100년 전 배교를 거부하던 신앙선조들의 목을 메달았다고 전해진 미루나무를 훗날 다시 심은 것이다. 신앙선조들의 아픔이 깃든 미루나무는 지금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많은 말을 간직한 채 수원성지를 지키고 있다.

수원성지를 감싸고 있는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낮이면 화성어차를 타고 성곽을 돌며 경치를 감상하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넘치고, 밤이면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장식된 눈부신 야경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8월을 보내는 수원화성은 더위를 잊게 할 만큼 활기차다.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200여 년간 수원을 지켜온 수원화성에는 한국 천주교의 아픈 역사도 존재한다. 지금의 수원성지 인근에는 죄인을 심문했던 토포청이 있었고, 정조대왕이 승하한 후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이곳에서 행해졌다.

수원화성에는 19곳의 순교터가 있었고 이곳에서 행해진 고문은 참혹했다. 미루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과 젖은 창호지를 얼굴에 붙여 질식사시키는 도모지형(백지사형)으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죽어갔다. 또한 장이 열릴 때면 장안문밖 장터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몽둥이로 매질해 공개적으로 처형하기도 했다. 서민이나 천민, 병사, 상인, 짐승들이 드나들었던 북암문에는 처형당한 천주교인들의 목을 걸어 천주교를 믿지 말라는 경고를 표시했다.

성안에 살았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눈이나 비가 오면 토포청에서 고문을 당하는 천주교인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고, 성곽 밖은 목이 없는 천주교인들의 시신이 엉켜있었다. 화성 내에서 순교한 무명순교자는 200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교구는 수원화성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해 2000년 북수동성당을 중심으로 수원화성 전체를 천주교 수원성지로 선포했다.

방화수류정 천장 십자가 형태의 대들보.

■ 수원화성에 남아있는 천주교의 흔적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명을 받은 다산 정약용이 설계하고 시공해 1796년 완성됐다.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는 수원화성은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며, 예술성도 갖추고 있다. 이에 동양 성곽의 백미로 꼽히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던 정약용이 설계한 수원화성에서는 천주교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라는 뜻의 화홍문(북수문)에는 7개의 수문을 따라 수원천의 물이 흐르는데, 7개의 수문은 칠성사, 성령칠은 등 천주교를 상징하는 숫자 ‘7’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화홍문에서 통과한 물이 흘러가는 남수문의 9개 수문은 칠성사와 성령칠은을 실천하면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신학적 의미를 떠올리게 해준다.

화홍문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2층 누각 형태의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을 만날 수 있다. 방화수류정의 서쪽 벽에는 86개의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는 서쪽에서 온다’는 뜻을 십자가로 표시했다는 해석도 있다. 또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펴보면 십자가 형태의 대들보 3곳도 발견할 수 있다.

북수동성당에서는 매달 첫째 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에 수원성지 및 수원화성의 순교터를 둘러보는 달빛순례를 진행한다.

신자들의 목을 걸어 천주교를 믿지 말라는 경고를 표시했던 북암문.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