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내가 가톨릭 신앙인이 아니었더라면 / 이윤숙

이윤숙rn(안나·조각가)
입력일 2019-08-06 수정일 2019-08-06 발행일 2019-08-11 제 315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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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수원 사람들은 화성 안에 사는 것이 ‘로망’이었다. 그만큼 성안과 성 밖 사람들의 삶의 질은 많은 차이가 났을 게다.

성인이 되어 성안에 사는 남자와 결혼하며 성안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문화재보호정책으로 성안은 개발이 제한되었고 시간이 멈춰진 마을이 되었다. 수원 외곽의 논밭은 개발되어 신도시가 생기며 삶의 환경이 정 반대가 되었다. 성안 사람들은 하루빨리 성 밖으로 이사 가기를 고대하였고 성안은 점점 더 쇠락해 갔다. 수원화성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성안 사람들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원망스러웠다.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었고, 신축, 개축도 쉽지 않아 매매도 되지 않았다. 좋은 환경을 찾아 아파트로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집 지키며 보상을 기다리는 생기 없는 마을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늘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고 예술을 통해 변화시켜보고자 많은 고민을 했다.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내 삶도 행복하기에 화성안마을 행궁동에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어려운 예술가들의 비빌 언덕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직접 지으셨고 함께 살던 오래된 구옥을 비영리전시공간으로 재생했다. 대안공간 눈은 그렇게 만들어 졌고 15년간 많은 청년예술가들의 비빌 언덕이 되었다. 그리고 주민, 예술가, 방문객들이 소통하며 마을 활성화를 위한 ‘행궁동사람들’ 이라는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행복해 하셨고 골목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을을 떠났던 분들이 다시 돌아와 살고 싶은 마을이 되었다.

주민주도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 성공 사례지가 된 이곳 행궁동벽화골목은 구석구석에 예술의 향기와 함께 역사, 사람이야기가 서려있다.

처음 마을 일을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은 ‘왜? 시장 나가려고? 시의원 하려고?’ 하시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어차피 다 떠나야 할 텐데 왜 돈과 시간을 낭비 하냐고 말리시는 분도 계셨다. 나는 조각가이나 환경을 변화시키는 작업도 작가의 몫이라 생각하며 작품에 혼신을 다하듯 행궁동을 예술마을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온갖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이 골목을 지키며 삶의 주변을 돌아보는 일, 돈 보다 마을에서 가치를 찾는 삶, 참으로 보람 있고 행복하다. 온전히 내 집을 내어 주고 쉼 없이 공간 활성화를 위해 함께 땀 흘리고 희생해 온 것은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톨릭 신앙인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삶을 선택이나 했을까?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윤숙rn(안나·조각가)